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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4

[28] 호설(號說): "청고" 큰아들의 호설(號說) 일찍이 네 선생께 호를 받았으니, 청고(淸高)다. 맑고 높음, 그 뜻이 좋다. 다만, 호 풀이 글이 없음을 아쉽게 여겨 뒤늦게나마 호설(號說)을 짓는다. 호 지은이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할까 염려된다. 호 주인의 마음에 흡족한 호설(號說)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淸(청)이란 맑음이요, 깨끗함이요, 밝음이다. 흐림이나 더럽혀짐이나 어둠이 있지 않음이다. 더러운 것을 맑음으로 바꿈, 어지런 것을 바로잡음을 이름이다. 맑은 물의 시원함과 상쾌함, 깨끗한 하늘의 밝음과 높음, 벌꿀의 달디단 맛을 배운다면, 곧고 반듯한 인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高(고)란 높음이요, 큼이요, 뛰어남이다. 낮음, 작음, 천함이 없는 것이다. 높은 산의 웅장함과 신비함, 하늘의 높음과 청명함, 새의 높이 남과.. 2023. 11. 10.
[15] 작호법(作號法), 또는 호의 분류학 내게 몇 분의 은사님이 계신다. 석박사학위과정부터 지금까지 나를 좋게 생각하시고 나 역시 존경하고, 특수교육(학)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넓은 가르침을 주신 지도교수님은 심재(心齋)를 아호로 쓰신다. 행동심리학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주신 다른 교수님은 송담(松潭)이란 호를 쓰신다. 두 분의 아호 모두 같은 분, 은사님이 지어주신 것이다.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또 다른 교수님의 아호 평촌(坪村)은 자호한 것이다. 어린 시절 사셨던 고향 마을 이름이라 하셨다. 내게 서예를 가르쳐주신 선생은 장포(藏抱)로 자호하여 쓰신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로 살아온 학자들은 정년에 즈음하여 기념문집이나 논총 같은 것을 후학들이 만든다. 문집이나 논총의 제호는 보통 "○○(아호) ○○(성명) 교수 정년퇴임기념논총"과 같은.. 2023. 10. 31.
[12] 이름[名], 그리고 작호(作號)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남들과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남들과 관계함이란 곧 소통이다. 남들과의 소통에서 그를 부르거나 또 다른 남을 가리키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나, 너, 그와 같은 말로 부르거나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소통을 정확히 하려면, 그 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부르는 말[號稱], 가리키는 말[指稱]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름을 짓는다. 우리는 '이름'으로써 그를 부르고 가리키는 것이다. 1. 이름, 동서(東西)의 차이 사람의 '이름', 이것을 '이름'에 있어 동(東)과 서(西) 간에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지금 곰곰 생각해 보니, 서너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차이점 하나는 이렇다. 우리에게 이름이란 성(姓)을 제외한 명(名)을 말한다. 우리에게 .. 2023. 10. 27.
[9] 아호설(我號說)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 과목을 가르치신 여러 선생님 중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선생님, 홍조띤 얼굴에 달짝한(?) 향을 풍기며 교실에 들어오셨다. 학교 아래 가까운 주점에서 막걸리 한두 잔을 드신 것이다. 요즘과 달리, 이것을 어느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 수업 때마다 늘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나는 한문학의 대가인 거라." 칠판에 두 손을 벌려 칠판에 두고 비스듬히 서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셨을 것이다. 그리고 문학인의 이름[名]을 말할 때면 꼭 그 분들의 아호(雅號)도 일러주셨다. 그 뜻도 풀이해주셨다. 이름마다 아호를 적은 유인물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최남선의 호가 육당(六堂), 이광수의 호가 춘원(春園), 오상순..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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