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아재를 만났다. 큰 동생부터 만났고 곧 들어온 작은 동생이 커피를 내려주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로 하루를 시작한 셈이다. 중국 출장에 감기 걸린 아재가 제일 늦게 왔다. 그간 평절공 실기, 문절공 문집 서문을 읽고 적으려 애썼다. 행서 글씨, 아는 글자가 반도 안 됐다. 곧 재미를 잃고 할배 서집 하나는 예스24에서, 도록 하나는 알라딘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결제하기까지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다. 거듭 거듭하여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에 아재의 강권에 점심을 조금 먹었다. 요새는 사무실에서 식사한다고 했다.
아재와 단 둘이 문중얘기를 했다. 어제 할 말이 있다고 한 말들. 경주에 올 때 걸려온 할배 전화 얘기도 했다. 단톡방에 이름이 없다고 했다. 병권 형님께 초대를 부탁했다. 그리고 할배한테 알리니 이젠 있다 했다. 다만, 최근의 공방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스캔해 보내드리기로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2시간 가량 그렇게 대화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의논했다. 심천 할배는 우리 둘만 믿고 있다. 그 말도 전했다.
내가 입력하고 제책한 족보작업 1차본과 교정본, 그리고 인명록을 사무실에 맡겼다. 나 개인이 더 볼 일은 없는 것이다. 증빙자료이기에, 경주에서 쓸 것이기에, 안전한 곳에 보관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구한 심천 할배 특선작(이 작품으로 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되셨고 생존한 이 거의 없어 중요하다)이 실려 있는 198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도록과 1988년 전국의 서실을 한 면에 하나씩 수록한 책(경주는 대구직할시 편에)까지 남겨두고 길을 나섰다. 심천 할배에게 의지하지 않고선 양대 선생 기록을 우리글로 옮길 수 없지만, 뒤로 미루었다.
3시 30분 출발했다. 은사님 사시는 영천 청통으로. 이곳은 옛어른들께서 계유정란 때 피화하기 위해 남으로 가던 중 잠시 머문 곳이다. 이곳을 경유하여 도망의 최종 종착지가 집성촌이 있는 건천(乾川)읍 금척(金尺)리다. 그 유명한 금자와 이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 고분을 여럿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1시간만에 도착했다. 인기척도 없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사모님 차가 보이지 않으니 외출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오해를 풀기 위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불쑥 찾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휴대폰과 주차해둔 마을회관에 내려갔다. 전화를 밝은 목소리로 반갑게 받아주셨다. '스승을 찾아서'라고 말씀드리고 절을 올렸다. 예상대로 사모님은 출타중이셨다. 오해가 생긴 이유는 예상을 빗나갔다. 그 대학과 그 대학과의 인연 설(說)이 그저 싫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셨다 했다. 그런 줄일지 깊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설(大說)이 아닌 소설(小說), 작은 얘기, 잡문만 쓰고 있는 것을 질책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생각이 깊지도 않고 짧았던 것이다.
곧 대화의 주제는 7년째 작업 중이신 그것으로 옮겨갔다. 방향을 바꾸었다 하시고 열심으로 설명하셨다. 그 작업을 하게 된 배경과 근자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다. 토론토대 연합교회(United Church)에서 심리학과 불교에 대한 강의를 맡을 분을 모신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듣고 응모했는데, 그 쪽에서 요구한 학위가 철학박사PhD가 아니라 신학박사여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고 하셨다. 지인들이 책으로 출간할 것을 권유받고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임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동국대 선심리상담 출강을 계기로 만나고 세미나 열고 한 스님이 자기 쪽 월간지에 2월부터 10회(심우도 10장 하나씩) 연재를 제안했지만, 단행본 출간을 원한다고 하셨다. 내년 출간 예정된 책 등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곤란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하셨다. 그건 핑계일 뿐이다. 난 솔직이 한국불교가 대승인지 의구심이 든다. 자기들이 '믿고 있는' 진리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고 있기에. 원시불교나 초기불교 얘기는 질색한다. 그들이 말하는 진리가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무엇인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난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진리란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 그토록 많고 난해한 경전 속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가 있기는 한 건지 반문하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의 <그런 예수는 없다>는 책을 읽었다. 은사님이 잘 안다고 하셨다. 그런데 출간된 책 제목은 <예수는 없다>였다는 것이다. 본래는 '그런'(such)이 있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시장성을 고려하여 삭제를 청했고 저자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인들도 일반인들도 궁금증에 구입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변심은 윤리의 문제를 동반한다. 행동심리학자 스키너의 <자유와 존엄을 넘어>도 비슷한 사정이 있다. 출판사에서 당초에 없던 '넘어'(beyond)를 추가한 것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고 오독되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 귀가 전에 서둘러 인사드리고 나왔다. 연로하신 분께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밥과 잠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번에 사모님께서 아침에 간 것을 많이 미안해 하셨다. 또, 갈 곳이 둘 남아 있었다. 인근의 팔공사 은해사와 도림사다.
은해사에 도착한 때 해거름 무렵이었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절, 그것도 380여개 말사를 거느린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훔쳐갈 보물이 않아서일까, 사천왕 지키는 곳 앞에 경비실이 있었다. 대강 방향을 알려주었다. 볕드는 쪽 나무를 골라야 하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직접 답사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 다음 에 따로 시간을 내기로 했다. 산채비빔밥 둘로 주린 배를 채웠다.
갓바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5킬로미터쯤 간 곳에 도림사가 있었다. 해인사 말사다. 어머니가 공을 참으로 많이 들였다. 납골당까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잠깐 머물며 명복을 빌었다. 두 산사(山寺) 모두 고요함에 둘러 싸여 있었다. 내일 난 포천에 있는 집으로 복귀한다. 자청한 고행에 몸도 지쳤고, 많은 사람들의 정처없는 배회에 마음도 아프다. 이 와중에 이 글을 쓰는 것, 완고한 고집이요, 집착이요, 중독일지도 모르겠다. 끝내고야 말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사연이야 모두 다를 것이지만, 모두 다같이 잘 살 수 길은 정녕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종교와 신앙과 교육, 하늘과 한울님과 하나님, 공자와 부처님과 예수님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024년 12월 4일(수)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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