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한 시절 교육부와 국립특수교육원을 하루가 멀다하고 제 집처럼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내게도 왕성히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특수교육에 관한 법률과 관련하여 논문을 몇 편 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당사자주의를 기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특수교육위원회" 소속의 몇몇 교사들과 장애를 지닌 아동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만든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가 민주노동당의 의원 한 사람을 내세워 법안을 발의케 하고 교육부를 압박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많이 보았다. 국립특수교육원이 추진한 연구과제 다섯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시절이기도 했다. 이 두 일을 한 그 기간 동안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 전해들은 것을 자서전에서 밝혀 특수교육의 사료로 남기고자 마음 먹은 것이다. 이 블로그의 "들안길과 SE&SS"라는 제목을 달고 나의 공적 생애를 적고 있는 것이 그 몇 가지다. 근거 자료를 갖고는 있지만 뒤져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내가 이 땅에 태어나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살아낸 나의 삶을 기록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수명을 다하여 땅에 묻히는 그날까지 내 삶의 족적을 나는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껏 살면서 어떤 부족함이나 결핍없이 순탄히 산 사람도 많이 봤다. 그와 반대로, 고생 고생하면서 어렵게 삶을 유지해 온 사람들, 그리하여 자기 분야에서 우뚝선 사람들, 고된 삶에 지쳐 제 멋대로 아무렇게나 산 사람들을 더 많이 봤다. 이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내 삶이 더 나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술과 노름과 외도와 폭행으로 얼룩진 삶을 산 사람이 내 아버지란 사람이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없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버린 것이나 한가지였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고자 했던 내 어머니가 결국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뒤 누나가 심장병 수술받던 중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리고 몇 해 전 내 동생 하나가 한많은 이 세상을 등졌다. 딸 둘을 먼저 보낸 어미의 마음이 어떨 것인가. 그런 악몽 같은 기억을 잃은 것이 다행일지 모르겠다.
이런 내 삶을 반추하며 나는 늘 나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내게 주어진 천명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본다. 마치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아이 셋 키워 대를 잇고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까지가 내 소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 뒷일은 고통없이 자연사하여 남은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밖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삶에 대해 기록한 것이 없다. 나는 기록 하나 없이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여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아온 삶을 내가 다닌 학교를 중심에 두고 적어보려 한다. 하다 보면 단서가 될 만한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대구에서 만난 어떤 사람과 대화하다 대명시장 인근에 '남남카바레'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1.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2. 초등학교 1학년 2학가-3학년 2학기
3. 초등학교 4학년 1학기-5학년 1학기
4.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졸업
5. 중학교
6. 고등학교
7. 대학
8. 대학원
대강 이렇게 구분한다. 언제 이 글을 끝내게 될지는 모른다.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공개 발행부터 먼저 하기로 한다. 조금씩 써내려 갈 것이다. 2024년 11월 29일(금)
이 미완성 글에 지금까지 제일 많은 댓글이 달렸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게 대부분이다. 읽지 않고 단 이런 댓글은 원치 않는다. 나 역시 영혼없이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그 댓글에 대한 댓글을 다는 것도 힘겹기 때문이다.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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