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분주히 옴직인다. 차들도 쌩쌩 달리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아침 식사 된다는 입간판도 보인다. 씨레기 국밥, 값이 참 착하다. 요즘 말로. 시레기란 말을 보니 믇득 쓰레기란 말이 연상되었다. 글자 한 자 비슷한 듯 다르다.
어제 새벽 이곳에 내려왔다. 여동생을 만나 달력을 전하고 헌책방에 도착할 무렵 10시 조금 넘은 때였다. 오늘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전에 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다. 조금 떨어진 철학관 앞에 차를 세웠다. 걸어서 갔다. 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구두수선점에 갔다. 친구분은 없었다. 내가 떠난 걸로 생각했다고 했다. 돌아온 이유를 말했다. 할 말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얘기 중에 자기가 매일 돈 달라고 오는 부랑객을 도와준 일도 얘기했다. 나의 관심은 그가 포기한 3층 25만원짜리 월세집에 쏠려 있었다. 알고보니 그도 원룸 건물 주인이었다. 단기 월세집 얘기를 했다.
다시 서점에 갔다. 인사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택배 준비로 바빴다. 커피 한 잔 데우는 중에 그가 식빵을 구웠다. 날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불편한 얘기었기에 숨 고르기가 필요했다. 밖에 나갔다. 그때 어느 노인이 도움을 요청했다. 카트에 김장용 배추, 무를 실어 끌고 가는데 주차된 차에 부딪칠까 걱정하여 도움을 구한 것이었다. 차를 지났지만 노인이 끌고가기엔 무리였다. 댁까지 끌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얼마 가니 앞서간 할머니가 쉬고 있었다. 고맙다고 하셨다.
댁으로 가는 길에 85세된 그 노인, 경북대 졸업한 수의사고, 할머니는 81세 약사라 하시며 명함을 건네셨다. 나도 명함을 드리며 전직이라고 했다. 100미터 가량 떨이진 자택 방 앞에 모두 내려드렸다. 박카스 하나 건네머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교수님께서 이런 일까지 도와주니 너무 고맙다는 것이다. 카드 반납도 가는 길이니 해드리겠다 해도, 굳이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같이 하면서 자식 자랑하셨다. 사돈네까지 의사가 13명이라 했다. 그 밖에 하신 말씀을 다 적지 않는다. 내일 전화하겠다고 하셨다.
명함에 적힌 것과 들은 얘기, 겉으로 드러난 인풍까지 모두 신사였다. 하시던 큰 사업을 정리 중이라 했고, 할머니는 주 이틀만 일한다 하셨다. 이 어른을 이렇게 만난 것 그 자체로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집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귀향이 그만큼 쉬워진다.
다시 서점사장과 만났다.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멀리 앉은 채로 요점만 얘기하라 했다. 모욕감을 참고 관계를, 서점일을 더 잘하기 위해 몇 마디 하겠다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한 그대로였고 기대를 저버렸다. 봉사가 아닌 노동, 조력자가 아닌 집사 같은 느낌, 생각이 들었다면 그만 두었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약속한 시간까지 오지 않으면 그냥 문 닫고 가라고 거듭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어찌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가. 방전된 사장차를 내게 맡기고 30분 뒤 시동 꺼달라는 그 부인과 딸이 말한 것에서 집사 느낌이 든 것이 이상한 것인가. 그 말 듣고도 문 닫고 가버리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내가 말하려고 메모한 열 가지 다 말하지도 못하고 일어섰다. "당신 눈에는 사람도, 책도 보이지 않고 돈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인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세상공부 잘 하고 간다."는 말하고 나왔다.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구두수선가게 주인이 위로하며 건넨 막걸리 한 잔을 귤과 같이 먹었다. 그 사장, 평소대로 심각한 표정지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난 조금 취한 기분으로 예전 살던 곳 주변에서 방을 알아보고 다녔다. 저렴했다. 풀옵션 투룸도, 단독 2층 가정집도 있었다. 결정은 하지 못했다. 아내와의 상의가 필요하기에.
당장 필요한 물건을 몇 사러 '토요일' 서문시장에 가는 중에 이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월당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이모께 전화했다. 받으시지 않아 이종 4촌 형에게 전화해 뜻을 전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오늘 밤 하루만 신세질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 건 안 된다 했다. 이모가 너무 힘들어진다 하며 모텔에 가는 것이 싸게 치인다고 했다.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격을 얘기하냐고 했다.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해한다고 했다. 물론 이해해달라는 그 이해와 이해한다는 그 이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렵사리 이 교수를 만났다. 그간 서점에서 야끼우동 주문해 먹던 그 반점에 갔다. 난 야끼우동 하나, 이 교수는 짬뽕국물에 막걸리 두 병. 앞의 그 노인 명함 보여드리니, 딴 건 보지 않고 수의사, 환경대학원 석사한 것만 봐도 대단한 분이라 했다. 며느리 될 분이 아들과 함께 내려 왔다는 했다. 임대아파트 하나를 양가 반반내서 마련해주었다 했다. 그 돈 모두 대출했는데 서류가 13개라고 했다. 돈 법시다. 나이들어 돈 없으면 초라해진다는 말을 다시 했다. 아들에게 전화왔고 그 사이 나도 아내와 통화했다. 이모 전화가 아내에게도 간 모양이다. 이모가 여러 번 전화하신 것을 알았다.
아들 있는 곳까지 모셔다 드렸다. 내가 전화로 부탁한 사람 이름 셋 알려준 것, 이모댁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란 말을 잊지 않았다. 잠깐의 통화로 상횡판단을 정확히 한 것이다. 예전 결혼해 큰 아이를 키우며 살았던 아파트가 멀지 않아 그곳에 갔다서. 많이,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공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차을 머물렀다. 이모께 전화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전화했다. 조금 뒤에 이모가 전화를 다시 하셨다. 뭔가 불편해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하는대로, 쓰레기라는 말을 나도 한다. 그때마다 좀 미안하다. 쓰임을 다하여 버릴 때 붙여지는 이 말, 사람에게도 붙여져 비하, 조롱, 무시 등 부정의 뜻을 지닌다. 어느 시가 말하는 것처럼, 숯검댕이 검다고 더럽다고 말하지 말라. 남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줘본 적이 있냐고. 쓰레기를 쓰레기라 하며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이 쓰레기일지 모른다. 쓰레기 '같은' 인간 쓰레기 차고도 넘치는 것이 이 땅 대한민국의 현실임을 다시 느낀다. 저녁에 '시레기' 국밥 한 그릇으로 쓰린 마음에 온기를 넣어볼까 하노라.
2024년 12월 1일
H.M. Han
[補] 달이 바뀌어 첫날이다. 매일이 그렇지만 첫, 처음에 시람들은 의미를 둔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나날이어야 한다. 노상차박 사흘째, 방향은 잃었지만, 내 살의 의미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고생의 수련일 뿐이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다. 이때는 사쿠라 훈민정음을 써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이 난다. 어제 사람 둘을 통해 경험한 사회생활의 그 '맛'! 인생이란 노마드 아니겠는가.
'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3] 202412 에피소드 (6) | 2024.12.03 |
---|---|
[52] 바둑과 예수 (4) | 2024.12.02 |
[50] 이유(理由)와 사유(事由) (6) | 2024.11.28 |
[49] 책의 운명, 어떻게 될 것인가 (4) | 2024.11.22 |
[48] 의료개혁과 의대정원 증원 그리고 심리학 (10) | 2024.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