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53] 202412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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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53] 202412 에피소드

by I'mFreeman 2024. 12. 3.

2024년 마지막 달 초하루와 다음 날 이틀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삼 고마운 일, 그래서 미안함이 있는 일, 훈훈하고 정감 있는 일들 속에 속상한 일, 황당한 일, 그래 그렇지 하는 일들이 함께 했다.

#1. 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어머니와 아내가 내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것이 급하다는 마음이 조급했었나 보다. 우연히 인연이 맺어진 그  분은 모든 걸 갖춘 분이었다. 명함에 컨설팅, 골프장 조성을 뒤늦게 보고 문자 보낸 다음 전화를 드렸다. 받지 않으셨다. 일요일이고 전날 김장할 재료들 준비해 가셨기에, 5시경 댁 근처로 갔다. 조금 힘써 도와드린 것으로 말씀드리려니 좀 염치가 없나, 결례는 아닐까 염려와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제 급히 도와드리느라(사실 나도 허리가 아픈 상태였다)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댁을 정확히 찾지 못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로 미루고, 동성로에 갔다. 그곳은 벌써 성탄절이었다.

     그 무렵 그 어른께서 전화하셨다. 사정을 대략 말씀 드렸다. 허가 전 일은 맡지 않는다 잘라 말씀하셨다. 그제 본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와 달랐다. 일 관계니 사업 모드를 취하신 것 같았다. 좀 당황했고 서운했다. 그러나 일은 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허가 후에 연락하라는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저녁 먹고 교보문고에 가니 핫트랙까지 성탄절처럼 되어 2025년을 준비한 각종 물건들로 가득차 있었다.

#2. 그 댁 앞에 기다린 때와 전화를 받기 때 그 사이에 나는 덕산德山공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헌책방에 출근할 때마다 한 번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서각 공방이었다. 그날은 그 시간에 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가니 어른 한 분이 자리에 앉아 계셨다. 인사하고 찾아온 까닭을 말씀드렸다. 한문 서예 작품, 편액 제작 중인 것(못 쓰지 않고 짜맞춘 것), 대로 만든 액자가 보였다. 심천 할배와 장포 샘 작품을 사진으로 보여드렸다. 그 어른도 공모전 출품 한 적 없다고 하시며 두 분 다 대단한 작가라고 하셨다.

    말문이 터이자 전각과 추사 선생, 한석봉 선생, 여초 선생, 오창석, 오세창, 제백석에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한자에 대한 임어당 선생의 말씀까지 처음 듣는 얘기들이 많았다. 현관 안쪽 문에 적힌 无碍門을 보고 无無로 자호한 얘기를 들려드렸다. 누가 써준 것이라 했다.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잘 못 쓴다고 덧붙여 말했다. 전화가 오고 댁에서 부인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대화하고 간다고 대답하셨다. 그 말 그대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하고 일어섰다. 다음에 밝을 때 오라 하셨다. 커피 한 잔 대접하겠다고. 아직 배달하는 다방 커피가 있는 것일까. 아니다. 카페 커피 배달이었다. 동성로를 향했다.

#3. 동성로를 벗어나 삼각노타리를 향했다. 옛 모습에 높이 자란 소나무, 쇠로 만든 구조물(작품),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고 있었다. 인근의 경상중학교에서 살았다는 말만 들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내가 졸업한 심인心印중학교가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잆었다. 물어보니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되었는데 땅에 바위와 돌이 너무 많아 건축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가서 보니 출입이 금지된 채 학교이름 새겨진 돌에 이름도 깎여 없어져 있었다. 그 넓은 공터만 남아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과 쓸쓸함만 남긴 채.

#4. 약 처방은 더 시급하고 긴요하다. 그 약이 없으면 난 식물성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고, 무엇보다 극심한 통증에 까닭없는 '몸의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극도로 낮아진다. 이 약과 식구들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의미 부여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배외하고 다니며 주위를 살피던 때, 인근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네 분만으로 세워진 병원을 봐두었다. 오전 10시 반 경 방문하여 진료신청을 하니 11시 30분으로 예약한 뒤 기다리라 했다. 처방 전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여직원이 알려주었다. 진료시 치료받은 모든 것을 얘기하면, 의뢰서 없이도 약 처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병원 내에서 기다리니 얼마 있지 않아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발병부터 약물치료, TMS, ECT까지 받고도 26년을 이 약을 먹고 버티었다 했다. 감마나이프 관계도 얘기했다.그런데 그런 것은 모른다 하고, 약을 보여줘도 모른다 하고, 2차 병원이어서 심리검사 후에야 처방할 수 있다 냉냉하게 말하며 16만원이라고 했다. 하지 않겠다고 하자, 1차 의원에 가라 했다. 진료비 청구를 위한 메모는 잊지 않고 주었다. 신상 민감정보 다 털리고 2만 5천원에 가까운 진료비만 내고 나왔다. 좋은 일 많이 했고 우리도 도움을 받았던 곽병원의 그 곽자 때문에 간 곳에서. 의료윤리가 실종되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곳이었다.

# 5. 11시 반 경이었다. 이곳저곳 찾아만 다녔다. 쉽게 올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방촌시장까지 갔다. 신천에 놓인 다리 하나 건너면 막내 이모집이 있지만, 이종형의 말에 두 번의 쓰라린 경험을 한 탓에 찾아가지 않았다. 내게 무슨 애절함이 있으랴. 신용불량에 노숙자 되고 제 엄마 집에 얹혀 사는 주제인 그 형이 이모와의 만남까지 차단한 것, 그것이 결코 이모를 위한 것은 아님을 안다. 나는 네 어머니만 챙기면 될 일이다.

    점심시간에 걸렸다. 익숙한 대명동에 있는 의원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내가 졸업한 명덕明德초등학교에 잠시 들러 사진 두 장 찍었다. 건물 둘이 얼마전에 철거된 것 외에는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의원에서 진료를 봤다. 청년의사였다. 약을 보더니 이곳에서는 이렇게 처방하지 않는다는 말, 약값이 많았을 것이라는 말, 처방한 의사가 곤란해질 수도 있는 처방이란  말, 1개월 처방까지만 관련법이 인정한다는 말을 들었다. 약 23년 진료받은 그 교수님께 무한의 감사와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앞의 의사는 그런 불리를 피한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 때문에 필요한 약을 제한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억대 연봉 받던 시절 나도 보험료 많이 냈다. 국민연금과 의료 개혁의 필요를 재삼 느꼈다.

#6. 의원 찾는 동안, 본래 그 서점에 넘길 작정으로 포천에서 가져온 책들 처리하기로 했다. 교보문고 옆 알라딘에 갔다. 주차장이 없어 교보에 주차하고 책들을 가져갔다. 심천 할배 고희기념도록과 서첩, 두 권을 구입할 돈이라도 마련하려고. 이런 이유, 저런 까닭으로 전부 되가져와야 했다. 전 날 봐둔 책 하나를 구입했다. 참 힘들었고 쓰라렸다. 책의 무거움과 이 세상살이를 이리도 모르고 있는 나 자신 때문에.

#7. 대명시장에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옛 단골집 집 옆에 보리밥/쌀밥 뷔페가 있었다. 허기진 몸과 피폐한 마음을 값싸나 푸짐한 쌀밥 비빔밥 한 그릇이 있어 달랠 수 있었다. 대구대 후문에는 대구대학교란 이름이 문기둥 돌에 새겨진 그대로 남아 있었다.

#8.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봐둔 곳이 하나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샀다. 커피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곳 사회적 협동조합에 있는 분들과의 대화가 목적이었다. 대구보건학교에 다니는, 중증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커피, 도시락, 반찬 등을 재활병원(옛 재활원 자리) 등에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앞산 쪽에 센터도 하나 있다고 했다. 조한진 교수가 조금 돕고 있음을 사진에서 봤다. 뜻하는 대로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
다 인사하니, 다음에 오시면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뜻하는 것은 정도가 심한 뇌성마비에 지적장애까지 있는 아이들도 법적으로 발달장애로 인정해 달라는 것, 그에 근거하여 아이들에게 알맞은 지원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어쩌면 참으로 소박한 바람일지 모른다. 지극히 당연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지만, 법 규정과 예산으로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많은 복지예산을 제대로만 집행해도 그분들이 원하는 것 할 수 있다. 그 사정은 잘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안타까울 뿐 달리 도울 방도가 내게는 없다.

#9. 교보문고에서 읽은 뇌괴학 책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를 살해하고, 텍사스 오스틴에서 총을 난사하고 죽은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여 조금 더 읽으니, 시신을 부검한 결과 도파민 관련 부위에 발견된 암으로 인해 도파민 분비가 막혀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무의식이...>이란 책이다. 구입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책을 읽을 시간도 없거니와 책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서다. 이 또한 버려지거나 유품으로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낙落옆이 바람과 조금의 비에 떨어져 흩어지고散, 날아다니고飛, 부서지고破 있었다. 그 떨어진 낙옆, 제 일도 아닌 분이 쓸며 말했다. 뜨거운 여름날 그늘 만들어 시원함을 준 고마운 나무라고. 단풍되어 멋진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게 하니 고맙지 않냐고.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시란 말에 같은 말로 화답했다. 이런 것이 도道요 깨달음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행복이요, 천국이요, 극락이 아니겠는가. 이 에피소드를 어제 적고 공개 발행한다. 이제 경주로 갈 시간이다.

2024년 12월 3일(화)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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