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에 따라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밝혀둘 것이 몇 있다. 이 글은 글쓴이의 개인적 체험담이다. 직접 체험한 이 에피소드를 공유함으로써, 나와 같은 생각으로 소장햔 책을 판매하려는 여러 분들의 실속없는 수고를 사전에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어떤 것도 비방 또는 흑색선전 할 의도는 전혀 없다. 이 점을 명확히 하여 오독을 피하고자 한다.
이른바 인공지능 시대다. 몇 단어만 넣어도 꽤 좋은 글이 생성된다. 작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안다. 그 작가들이 쓴 글은 어떨까. 대개 맛집 소개, 가볼만한 여행지 안내 류의 글들이다. 대형출판사들도 앞다투어 전자책 발행으로 방향을 옮겼다. 종이책이 아니라 구독하는 전자책, 블로그, 너튜버 등으로 지식을 얻는 것이다. 하여간 글을 청년들이 쓰고 읽는 것, 책방에 젊은 사람들이 많고 책을 구입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바라는 것이다.
세대 교체기로 보인다. 이른바 86세대도 은퇴를 준비하고 그 윗 세대의 많은 어른들이 귀히 소장하던 책들을 처분하고 있다. 그냥 버리거나, 폐지로 팔거나, 헌책방에 판다. 많은 고서, 희귀서도 이 추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 봤다. 나도 책을 많이 버렸다. 그래도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평생 학인(學人)으로 산 사람들 공동의 고민이 책의 적절한 처분이다.
대학 전공서적은 일반인들의 예상과 달리 질이 낮다. 무슨 자격 관련 '법정 과목' 전공서는 다수가 쓰레기다. 나는 생각했다. 책을 팔기로. 이 결정은 책을 얼마간의 돈으로 바꾸는데 주된 목적이 있지 않다. 쓰레기 같은 책을 헌책으로 유통케 함으로써, 또 다른 쓰레기의 양산을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책 하나에 얼마나 많은 종이가 사용되는가. 그 종이들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 환경운동이 별난 것인가. 나무 한 그루 살린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아니다.
100권 조금 넘는 책으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헌책방 봉사할 때, 책을 팔러온 사람들이 말했다. 알라딘은 그보다 더 준다고. 그래서 그 책을 차에 싣고 알라딘으로 갔다. 주차장은 없고 유료 주차장도 대기해야 했다. 다행히, 그 인근에 교보문고가 있었고 구입할 책도 있어 그곳에 주차하고 알라딘에 갔다. 일단 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바로 옆인데도 책 옮기는 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혼자서 몇 차례 나누어 옮겼다. 매입 가능 도서인지 바코드를 찍었다. 둘로 나눠 정리하는 걸 보고 절반은 유통 가능한 줄 알았다. 단 한 권도 매입 가능한 것이 없다고 했다. 훼손이 심한(?) 것, 바코드 없는 것, 이름이 적혔거나 도장이 찍힌 것, 볼펜으로 메모한 것, 재고가 많은 것, 가격이 없는 것, 증정받은 것이 그 사유였다. 실상 갖고 간 책이 대부분 증정 등 새 책과 같은 헌책이었다. 그 면만 다른 종이로 교체할 수 있으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셈이다. 무상 처분은 가능하다 했다. 매입 판매 안내문을 그제서야 내밀었다. 도로 가져오는 것만 조금 도와주었다.
이렇게 첫 시험은 처참하게 끝났다. 1시간 조금 넘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1만원 조금 넘는 책 한 권 구입에 1시간 무료로 차를 세워준 교보문고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앞서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한 권의 책과 함께, 문중 심천 어른 서예전 도록 한 권, 서집 한 권을 각각 5만원, 4만원에 알라딘과 예스24에서 구입했으니, 결과적으로 책을 줄이지 못하고 더 늘이게 되고 말았다. 도로 가져온 쓰레기 같은 책과 함께, 그 몇 수십배 되는 양서를 소장하고 있다. 이 손때 묻은, 나와 20년 이상 동반자가 되어 논문자료로 쓰인 이 책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심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책이 가장 안전한 곳은 절이라는 소식, 실로 반가운 것이다.
2024년 12월 21일(토) 동지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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