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54] 지금 이곳은, 지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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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54] 지금 이곳은, 지금 나는

by I'mFreeman 2024. 12. 7.

이곳에 올라 온지도 사흘째다. 이곳도 춥다. 더 춥다. 단풍나무에 든 단풍까지 모두 떨어져 마른 잎, 고엽(枯葉)이 된지 오래된 듯 보인다. 그곳은 단풍나무 단풍만은 절정임을 보고 왔다. 이땅이 이리도 넖단 말인가 싶다. 겨울이 정말 싫다. 유년기에 겪은 악몽 같은 일들, 그 기억들 때문만은 아니다. 살점 거의 없는, 피골상접의 몸 때문만도 아니다. 찬 바람이 불고 추워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증상들 때문이다. 이번에는 콧물과 기침까지 더해져 몸살난 것 같다.

    31일짜리 적금을 빠짐없이 다 넣은 줄 알았다. 입금하고 보니까 나흘 남았고, 이곳에 온 날 입금하지 않은 걸 뒤늦게 알았다. 매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요일 감각부터 없어졌다. 매일 그날이 그날이다. 실수가 많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그간에 세월만 무심히 흘러갔다.

    조금 전에 아내가 돌아왔다. 이곳에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아내는 바쁘다. 하고 있는 일이 막바지이고, 김장도 해야 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사흘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외출 간 뒤로는 혼자였다. 그 시간 동안 자연스레 나의 현 처지와 향후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전기요금 때문에 이 큰 집에서 아내는 거의 냉방처럼 지냈다. 내가 돌아오고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춥다. 바닥에 따뜻한 온수가 지나간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내가 춥다고 하는 것은 그 사실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눈과 귀와 피부는 실재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두뇌는 다르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이것저것과 연관지워 해석한다. 그 해석이란 것이 사실에 부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역사연구는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을 엄밀히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인간군상의 오해와 갈등과 대립, 악감정과 망상과 악행이 생긴다.

    두뇌는 정직한 감각기관과 달리 거짓에 능숙하다. 컵에 절반'쯤' 담긴 물을 보고 정확히 '절반'으로 해석할 줄 안다. 그 물이 절반'밖에' 없다고도, 절반'이나' 있다고도 할 줄 안다. 두뇌가 이렇듯 거짓되게 해석하는 일에 능숙하니, 두뇌의 크기나 기능이 크거나 좋을수록, 나쁜 짓을 더 잘할 가능성이 크다. 머리 좋은 사람일수록 나쁜 놈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아내에게 이모가 두 차례 전화를 하셨다고 말했다. 전화는 없었다. 잘못 거신 거였다. 객관적 사실이다. 이모한테 전화를 드렸다. 힘찬 목소리로 통화했다. 그날 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거듭하셨다. 그렇지 않다는 말로 안심케 해드렸다. 이종형이 한 말, "안 될 일, 모텔이 싸게 치임" 등의 말, "가격을 얘기하느냐"는 나의 되물음, "오해하면 안 됨" 등 그 형의 말은 명백히 객관적 사실이다. 그 사이의 생각들, 오해의 여부는 각자의 주관적 해석이다. 오해할 일이 아니다. 그런 형놈이다. 나의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외롭다. 이 감정 역시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외롭다."는 이 글은  객관적 사실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유명한 말이나 영국에 외로움 전담 장관직이 생겼다는 오래전 뉴스가 있는 걸 보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살면서 한 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기에 타인들과 좋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지 않았는가(신에 의한 추방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낙천/낙관주의자도, 염세/비관주의자도 아니다. 그 사이, 흑과 백의 중간지대에 머무는 도도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 사이길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길은 처세를 위한 한 가닥 '술'(術)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건없는 긍정 모드를 극도로 혐오한다. 무조건적 부정 모드 또한 싫어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려 애쓸 뿐이다. 피할 생각도, 못 본 척 무시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직면만이 내 길이다.

    유년기 시기에 싹트고, 인사청문 제도 후 확고해진 삶의 방향이 있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 그런 삶을 살다 간 사람! 누가 너 잘났다 한들 뭔 상관이랴. 바꾸기로 한 건 하나 있다. 의(義)를 좇고 시비(是非)를 따지는 삶의 방식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정당한 이(利)는 좇아야 한다. 이해득실부터 먼저 따져야 한다. 길게 말했지만 선후를 바꾼 것일 뿐이다. 이기적으로 살라는 은사님 말씀도 있었다. 자신부터 이롭게 하는, 숱한 노력이 필요한 삶으로 전환해야 하는 그때가 바야흐로 도래한 것이다. 햇살이 들어 추위를 많이 거두어갔다. 동면, 칩거만 남았다.

2024년 12월 7일(토)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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