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과의 첫 만남! 그 첫 대면의 날은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와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어느 때 사귀던 아내와 단 둘이서 함께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바(bar)에서 만난 것이 아님은 분명히 알겠다. 1980년대 그 당시, 돈까스 등 일본식 서양 음식을 팔던 곳, 레스토랑이라고 하던 곳에서 칵테일과 첫 대면을 한 것은 확실하다. 또, 진 토닉(Gin Tonic), 블랙 러시안(Black Russian), 키스 오브 파이어(Kiss of Fire)...를 마셔 보았던 것도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또, 젊은 시절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칵테일"을 '극장'에서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줄거리는 기억에 거의 없다. 어둑한 실내에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고, 바텐더 뒤에 자리한 술장에 온갖 술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던 장면이 흐릿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술병을 높이 던졌다가 받아내고, 술을 섞어 넣은 쉐이커를 격하게 흔들어대는 등 조주(造酒)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현란한 동작들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박사학위과정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대학원 공부는 대부분 영어로 쓰여진 책이 교재였기에 그 책을 읽고 우리말로 옮겨 발표하는 것이었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했다. 박사학위과정 3학기에 지도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처음으로 대학강단에서 강의하게 되면서부터, 이곳저곳에 있는 대학을 다녀야 했다. 어느 단체 실무도 맡았고, (국책)연구과제 몇에도 참여했고, 박사학위논문도 써야 했다. 눈코뜰쌔 없이 바빴다. 잠도 부족했다. 여유롭게 한 잔의 칵테일을 '즐기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내게는 사치였다.
1996년 8월, 마침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8년 3월에 대진대학교 전임강사가 되었다. 부임 후 몇 해 뒤 어느 겨울날 학생들이 마련한 '사은회'에 홀로 참석했다. 뒷풀이로 의정부 어느 거리에 있는 '바'에 갔다. 칵테일과의 재회였다. 그날의 '만남'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세월이 흘렀다. 2007년 가을 조선대에서 열린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했다. 저녁 만찬 뒤에 몇 분과 함께 광주에서 전주로 자리를 옮겼다. 우석대 김윤태 교수가 객사(客舍) 인근에 있던 '바'로 우리를 데려갔다. 이 역시 그 사실만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이 두 번으로 '바'에서 칵테일 즐김은 끝이 났다.
그로부터 10년 여의 세월이 흐른 어느 해(아마 2018년), 그러니까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도언이 집에 온 어느 날, 칵테일과 또 다른 재회를 했다. 칵테일에 흥미가 생겼다며 취미로 삼겠다고 했다. 하여 어느날 나는 몇 병의 술을 사주었다. 아내는 칵테일을 만들 때 쓰는 각종 도구들을 인터넷 전자 상거래로 구입했다. 그 도구들을 꽂아두는 것도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내가 나무로 만들기로 했다. 우리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들어낸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를 전동 톱으로 잘라 다듬고, 구멍을 뚫고, 옻칠도 했다. '바'의 이름도 짓고 깃발도 만들어 꽂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필요한 술을 사들였다.
그러던 중에 돌연 도언이 그만두겠다고 했다. 값비싼(?) 술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칵테일은 도언의 취미에서 나의 취미, 나의 공부거리가 된 것이다. 칵테일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씩 알아가던 칵테일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책없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정보들로 하되, 영문 위키피디어에 있는 글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말로 옮겼다. 레시피만큼은 국제바텐더협회(International Bartender Association)가 정한 표준을 익히고 다른 곳에 있는 것들도 참고했다. 대학을 다니던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내가 조주방법을 익힌 칵테일을 만들어 맛보게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보고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말로 옮겨 컴퓨터 파일 속에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겼다.
칵테일에 대한 공부와 함께 그 '생산자'가 되고보니, '알'아야 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도, '필요'한 것들도 많음을 알게 되었다. 칵테일(cocktail)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가 어디서 온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수탉'(cock)의 '꼬리'(tail)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아무튼 '칵테일'이란 어떤 술에 또 다른 술과 여러 종류의 음료와 또는 첨가물 등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만든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쉬운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칵테일을 만들 때 쓰는 술도 종류가 너무나 많고, 술과 술, 술과 음료 등을 섞는 비율도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 뿐만 아니다. 조주 기법도 여럿이고, 장식(garnish)도 종류(장식을 하는 칵테일일 때)가 여럿이다. 이것의 조합(combination)만으로도 무한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 칵테일마다 섞은 술을 담는 용기(글라스)도 제각각 다르다. 칵테일의 지평이 광대무변하다 할만 하다.
칵테일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술은 리쿼(liquor)와 리큐어(liqueur)다. 리쿼(liquor)는 증류주다. 곡물이나 과일을 '증류'하여 만든 술, 곧 브랜디(brandy), 위스키(whisky/whiskey), 진(gin), 보드카(vodka), 럼(rum), 데킬라(tequila), 이 여섯의 '증류주'가 칵테일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기본주(base)라고 한다. 증류주를 만들 때 사용한 곡물 또는 과일의 종류, 숙성기간, 표준 도수(ABV) 등에 따라 각각 수많은 종류가 있다. 와인, 맥주, 커피도 사용된다.
리큐어(liqueur)는 증류주, 즉 리쿼에 설탕과 과일/허브/견과류 등에서 추출한 향이나 향신료 등을 첨가해 만든 술이다. 그래서 향주(香酒)라고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혼성주라고 한다. 혼성주 중에서 특별히 쓴 맛이 강한 것을 비터스(bitters)라고 한다. 우리 말로는 고미주(苦味酒)라고 한다. 혼성주는 향신료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그 갈래마다 각 제조사의 브랜드가 붙은 혼성주가 있다. 이런 까닭에 혼성주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밖에 각종 과일 주스(크랜베리, 레몬, 라임, 오렌지, 파인애플 등), 청량 음료(콜라, 레몬에이드, 사이다 등), 토닉 워터나 진저 에일, 때로 와인, 샴페인, 맥주, 초콜릿, 그리고 시럽(심플시럽, 그레나딘 등)을 넣기도 한다. 이 또한 종류가 많다.
기본주에 혼성주와 때로 고미주, 그리고 각종 음료와 때로 시럽 등을 넣고 섞는다. 만들고자 하는 칵테일에 따라 재료를 섞는 비율도 다르고, 재료를 섞는 방법도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우선 계량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거라는 도구를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액체의 양을 가리키는 단위가 레시피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ml/cc로 환산해야 할 때도 있다. 계량한 만큼의 재료를 이제 섞어야 한다. 재료를 섞는 방법 또한 칵테일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다. 붓기(pouring), 휘젓기(stiring), 흔들기(shaking) 등등의 방법이 있다. 이때 대개 얼음이 필요하다. 깬 얼음 조각이 있어야 하는 것도 있다. 얼음분쇄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섞은 것을 글라스에 담아야 한다. 글라스는 만든 칵테일의 종류에 맞는 것을 사용한다. 글라스의 종류도 여럿이다. 보기만 해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비슷비슷해보이는 것도 있다. 서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은 '가니쉬'(garnish)라 칭하는 장식을 하는 것이다. 소금이나 설탕을 글라스 테두리에 바르는 것도 있다. 이것을 리밍(rimming)이라 한다. 레몬즙 같은 것을 짜서 리밍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하면 좋다. 과일 껍질, 얇게 쓴 과일, 양파 등으로 장식할 때에는 장식을 바텐더가 볼 때 글라스 오른쪽에 한다. 마시는 사람이 왼손으로 글라스를 쥐고 오른손으로 먹을 수 있게. 때로는 종이로 만든 작은 우산과 같은 것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이제, 서빙만 하면 된다.
칵테일은 그 이름처럼 제각각 사연이 있다. 모종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칵테일이다. 이런 사연 내지 신화 또는 상업적 스토리 같은 것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저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여유롭게 그 맛을 음미하고 싶다면, 이런 얘기거리가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가진 전문 바텐더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도언이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내게 사주었다. 조주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험서다. 자격증을 취득해보란다. 그 시험이 한국산업인력공단 주관으로 매년 몇 차례 있음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언을 데리러 시내에 나갔다가 시간이 좀 있어 술을 사러 갔다. 그 날, 주인에게 내 생각을 말한 적이 있었다. "Booktail"로 이름을 짓고, 평생 모은 책들을 꽂은 책장으로 인테리어를 하여, 누구나 칵테일 '한두 잔만' 마시며 세상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바, 그런 바를 퇴직 후에 해보고 싶다 하니,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하며 자기도 나이 더 들면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 때 일을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말한 그 생각은 그저 한 때 스치어 지나간 소망일 뿐이었다. 행동으로 옮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과일에 대해, 계량에 대해, 뒷 이야기 등 새로 알아가야 할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3-4잔의 칵테일을 레시피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의 솜씨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할 때마다 실수의 남발만 있었다.
그 대신, 내가 생각했던 '바'를 집에다 두고 어슬퍼게나마 가족들에게 서빙할 것이다. 문중 일로 손놓았던 칵테일 공부도 재개하여 다종다양한 칵테일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싶다. 그간 적지 않은 술을 사들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각각 다른 날에, 각기 다른 칵테일을 만들어 한 잔씩 함께 마시며 도란도란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풍경을 내 마음 속에 그려본다. 옛 영화 칵테일을 다같이 보기도 하고. 마로니에의 옛 노래 칵테일 사랑도 함께 듣고 부르며.
2023.10.21(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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