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글에서, 나는 사람이 엄마의 태(胎)에서 나온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의 삶을, 불가(佛家)의 용어를 빌어 고해, 곧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괴로움[一切皆苦]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사고락'(生死苦樂)이란 말도 있고 '고진감내'(苦盡甘來)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괴로움과 즐거움은 동행하는 것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괴로움도 그 끝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삶에 괴로움만 있지 않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아니, 괴롭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어려울 때가 있는가 하면, 유쾌하거나, 기쁘거나, 즐거울 때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괴로움과 즐거움, 이 둘이 함께 새겨져 있는 동전과 같은 것이다. 유쾌함, 기쁨, 즐거움이 지극히 순간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슬처럼 순식간에 왔다 사라져버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진실로 긍정의 감정을 느낄 때보다 부정의 감정을 느낄 때가 월등히 더 많다고 해도, 우리는 고락의 동행을, 고통의 다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삶을 참아'내'고, 견뎌'내'고, 살아'내'야 한다. 그 괴로움이 다하면 기쁨과 즐거움이 올 것이다.
사람살이에 대해, 그 '즐거움'에 대해 옛 선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글을 남겼을까 궁금했다. 그리하여 그 말씀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맹자의 '군자삼락'을 키워드로 삼아 찾아 보니, 공자 말씀도 있었다. 이 땅 조선에서 살았던 옛 어른들의 말씀도 있었다. 신문에서 읽었지만 출전을 몰랐던 다산 선생의 '삼락'도 있었고, 추사 선생과 상촌 선생도 '삼락'을 말씀하셨음을 발견했다. 상촌 선생의 삼락 글 둘은 "동매월류...인간삼락"이란 글을 쓰면서 뜻하지 않게 찾아낸 것이다. 공맹의 말씀부터 먼저 읽어본다.
1. 공맹의 삼락
성인 공자는 자신의 인생 말년에 기쁨[說]과 즐거움[樂]과 성나지 않음[不慍]을 말했다. 그 유명한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있는 말씀이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낙호).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이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다음과 같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벗(동지)이 멀리 있는 나를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 나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 생각에는, "또한 ...아니한가"에 있는 기쁨[說], 즐거움[樂], 군자(君子), 이 셋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구절에 대한 나의 이설(異說)은 이렇다. 앞의 둘에서는 배움과 익힘에서 오는 기쁨과 뜻을 같이하는 벗의 찾아옴에서 오는 즐거움, 곧 자신이 느끼는 긍정의 감정을 드러냈기에, 셋째 구에서 말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성나지 않음' [不慍]과 연결하는 것이 더 무난해 보인다는 것이다. ' 성나지 않음'이란 곧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기 마음에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경지를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기쁨-즐거움-군자'를 '기쁨-즐거움-성나지 않음'으로 바꾸어 읽으면 어떨까. 배우고 익힘 그리고 동지의 방문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성이 나지도 않고 따라서 성을 내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군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뭔가 배우고 익혔을 때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기뻐할 줄 알고, '나를 알아주는' 벗이 멀리서 찾아주었을 때 앞뒤 재지 않고 즐거워할 줄 알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뭐라고 하든 '평상심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인격의 소유자를 군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 성인이나 현인이라면 모를까, 장삼이사(張三李四), 범부(凡夫)에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어찌 매양 기쁜 일이기만 하겠는가. 동지라 하더라도 그가 나를 찾아올 때 그때마다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성이 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조선 시대, 특히 노론의 장기 집권기에, 내가 경서의 첫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면, 그 해석을 남들에게 말하거나 글로 적었다면, 사문난적(斯文亂賊), 곧 사문을 어지럽힌 도적으로 몰렸을 것이다.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공문의 적통을 이어받은 맹자는 "군자삼락"을 말했다. <학이>편의 이 말씀에서 '군자'와 '즐거움'[樂]을 취해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맹자(孟子≫ <진심(盡心)>편에 실려 있는 맹자의 말씀을 들어본다.
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 而王天下不與存焉(이왕천하불여존언).
父母俱存(부모구존), 兄弟無故(형제무고), 一樂也(일락야).
仰不愧於天(알불괴어천), 俯不怍於人(부부작어인), 二樂也(이락야).
得天下英才(득천하영재), 而敎育之(이교육지), 三樂也(삼락야).
"맹자께서 이르시길,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바, 하늘 아래 왕이 됨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이 말씀을 나는 "교육학개론" 책에서 접했다. 교육이란 말이 곧 삼락에 나오는 '교육'(곧 가르치고 기르는 것)에서 온 것임을 서술한 책을 통해서다. 영재란 말도 그렇고, 퇴직한 교원들의 단체명(교육'삼락'회)도 그렇다.
아무튼 아성(亞聖)이라는 맹자가 말한 즐거움은 겉보기에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해 보인다. 나를 낳아준 부모, 나와 피를 함께 한 형제 중에서 어느 누구도 먼저 죽은 이 없이 살아 있는 것, 그것을 맹자는 군자의 즐거움에서 첫째로 들었다. 당연해 보이는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맹자가 산 시기가 전국시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에 누나를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오래다. 두 해 전에는 바로 아래 여동생도 허무하게 갔다. 나에게는 이런 즐거움도 마땅히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죽음이 없는 집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두 번째 즐거움이라 했다. "앙(仰)..., 부(俯)..."는 관용어구로서 수많은 문헌에 등장한다. 윤동주의 <서시>에 보이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시구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죽는 그 날까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 삶, 그 삶을 살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애비가 되려고 무척 노력했다.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양심에 저촉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주검이 되는 그 순간까지 잊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
영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을 세 번째 즐거움이라 했다. 견일영이란 분이 대구성보학교(공립 특수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우삼락(又三樂)"이란 제목의 글에서 둔재(鈍材)를 교육하는 것도 또한 삼락이라 했다. 나는 범재(凡材)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첫 석사과정 제자가 학술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배우는 자가 영재든 범재든 둔재든, 먼저 깨달음을 얻은 선학이 후학을 가르치는 것, 더 나아가 그를 기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삼락 앞에 있는 구절, 곧 "하늘 아래 왕이 됨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 삼락 뒤에 한 번 더 나온다. 강조의 뜻을 담은 것이라 하고, 여러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주(周)의 제후국 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든 패도(覇道)의 시기다. 이런 시기에, 왕이 되는 것도,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피를 동반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맹자는 왕도(王道) 정치의 실현을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주유했다. 하지만, 그 뜻을 결코 이룰 길이 없음을 깨달은 맹자, 그가 말한 즐거움 셋을 즐길 만한 제후[왕]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왕 노릇하는 것도 실상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맹자는 천자든 제후든 왕을 성인 '군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23년 10월 17일(화)
ⓒ 2023 H.M. Han
p.s. 글을 길게 쓴 탓에 한꺼번만에 모두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느꼈다. 글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본래 쓴 글을 둘로 나누었음을 밝혀둔다. 조선 유학자들의 삼락, 즐거움과 즐김의 뜻과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은 "<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의 7번째로 옮겼다. 다시, 말한다.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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