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춘천으로 가족 나들이를 갔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아니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지만, 몸이 불편하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도언이 갈 거냐고 묻는다. 가보자는 말이다. 집에만 머물러 있는 '나를 위해.' 즉답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앞으로 우리 아이들과의 가족 나들이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고 나설 준비를 했다. 올해 내 생일에 장인께서 주신 용돈도 그대로 있어 아이들이 있을 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근무하고 집에 온 나언은 잠을 자야 해서 동행하지 못했다. 하루 앞서 새벽에 온 도언과, 이언, 아내, 이렇게 4명이서 문밖을 나섰다. 나언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 도언이 운전하는 차에 우리는 몸을 싣고 출발했다.
일차 목적지는 세계주류마켓이다. 얼마 전 도언이 이미 갔다 온 곳이다. 그때 내가 주문한 예거마이스터와 압생트를 사왔다. 규모가 얼마나 크고 또 얼마나 많은 술들이 있었는지를 사진과 함께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한번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곳을 맨먼저 가게 된 것이다.
도언이 말한 그대로 규모가 상당히 큰 곳이었다. 리커와 리큐러도 종류별로 많았지만, 와인은 정말 엄청 많았다. 우리 집에 화이트 와인은 없다. 아내에게 하나 고를 것을 권유하고, 나는 리쿼(liquor)와 리큐어(liqueur)를 둘러 보았다. 저렴한 편이었지만 사고싶은 것을 모두 살 수는 없다. 생각하고 망설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술로 만든 칵테일을 마셔보게 할 작정으로 꼬냑 하나를 구입하기로 결심한다. XO 등급이어서 가격이 높았다.
아내와 도언은 스위트 로제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산(産)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을 골랐다. 우리는 다시 만나 그레나딘 시립과 애플 퍼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라임 주스도 하나 담았다.
조그만 잔에 와인 담긴 것이 눈에 띠어 이언에게 사주려 했다. 예선과 함께 마시라고. 가격 때문인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고른 꼬냑의 구입을 아내와 도언이 만류했다. 앞서 소량에 비해 값이 비쌌던 앙고스투라처럼. 둘 다 구입을 단념했다. 브랜디 하나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잭다니엘 하나와 함께.
매장 내 동굴(Cave)도 둘러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 뒷 편에 사케 등 일본술도 있음을 보았다. 동굴에는 고급 와인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 쪽에 시거(cigar)도 있었다. 와인 1병에 3000만원이 넘는 것도 있었고 시거 1개피가 45000원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의암호를 향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둘레길을 걸었다. 스카이워크에도 갔다. 아내는 무섭다며 들어오지 못했다. 아내와 도언이 사진을 찍었다. 호수가 참 아름다웠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시 걸었다. 아내가 제피 열매를 발견하고 조금 취했다. 추어탕 한번 끓이겠단다. 난 축구공보다 큰 벌집이 높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빈집일 것이다. 작년 일이 생각났다.
다시 차를 탄다. 저녁 밥을 먹을 때가 됐다. 예전에 갔던 그 식당은 다음을 기약하고 임자탕을 먹기로 했다. 석사동 주택가의 후미진 곳에 있는 그 곳으로 갔다. 주인 내외 두 분이 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비빔 도토리국수 둘과 임자탕 셋, 그리고 도토리전 하나를 주문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다.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모두 만족했다.
이제 포천 집으로 갈 일만 남았다. 오는 길에 이마트에 잠시 들러 이것저것 아이쇼핑하었다. 맥북, 스피커, 레고 블럭 등을 보았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언을 그곳에 내려주었다. 얼마 전 전역한 때,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도 하지 못했고, 축하금 한 푼도 주지 못했기에, 용돈을 주었다. 돈 있다며 사양했지만 억지로 손에 쥐어 주었다. 내년 3월이 되면 이곳에서 이언은 2년을 살아야 한다. 남은 대학 공부를 하며.
집에 돌아왔다. 9시 조금 넘었다. 나언이 아내에게 오는 길에 닭강정 사달라고 카톡을 보낸 모양이다. 아내는 집에 와서야 확인했다. 나언이 좀 서운했을 것 같다. 오늘 사온 와인을 연어와 함께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언이 흡족해했다. 도언은 잭다니엘과 토닉워터만으로 간단히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우리 가족만의 정겨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애플 퍼커가 없다. 착오가 있었던 모앙이다.
12시 반 쯤 잠자리에 들었다. 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9시쯤 도착한 짧은 가족 나들이, 그에 이은 소박한 술자리였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어 마음에 들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고맙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좀더 가깝고 친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 삼남매가 늘 서로 의지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탈없이 잘 살아가기를 진실로 바라며 마음으로 기도한다.
2023년 10월 16일(월)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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