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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1] 가르침과 가리킴

by I'mFreeman 2023. 9. 25.

나 홀로 빈집[空家]를 지키고 있다. 오늘은 아내가 70, 80대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러 나가는 날이다. 그 연세에 '배움'에 입문한 그 어른들의 용기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아내가 그 유의(有意)한 일을 하러 가는 날이면, 혼자가 된다. 홀로 있음(being alone)이 반드시 외로움(loneness)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홀로 또다른 자신과 대면, 직면하면, 옛일을 반추하게 된다. 내면의 힘이 온축된다. 외로움[고독]은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낀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재작년 전지한 소나무 가지들이 벌레 먹은채 집안 여기저기에 늘려 있다. 막대나 말뚝으로라도 쓸 요량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다. 벌레들 '덕에' 쉽게 벗겨지는 것도 있고 칼로 깎아내야 하는 것도 있다. 진실로 지금껏 이걸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내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은 최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로 삶의 좌표를 잃어 어떤 의미있는 행위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니, 진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돌아왔다. 내게로 다가온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내 옆에 놓여있던 커피잔을 보며 말한다. "덮개로 덮을 것을 가져와야지." 그러곤 집 안으로 들어간다. 파리나 모기같은 것이 내려앉아 잔 테두리가 더렵혀지는 걸 피하기 위해 아내가 몇 년 전 구입한 잔 덮개를 가지러 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아내의 도타운 맘보다 아내가 한 말을 생각해본다. 언어학에서도 화용론(pragmatics)이 더 중요하다 하기도 하고, 정확히 소통되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문법에는 맞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매사 시비(是非)를 가려야 하는 그런 내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아내에게 '말'로 전한다. 가르쳐주려는 마음까지 생겨 몸소 행한 것이다.

    난 작년 대진대학교에서 퇴직했다. 이제 전직 교수다. 명예교수가 되었지만 그건 실직(實職)이 아니다. 무직의 50대 말 초로의 노인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대진대 24년에 이런저런 대학에서 강사로 강의한 경력까지 29개성상(聲霜)의 세월, 지금까지 내 삶의 절반을 대학 강단에서 보냈다. 옳고 그름을 '가리고' 그걸 '가르치는' 일을 진정 열심히 하면서...

    아내가 한 말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보거나 들을 때, 어떤 글을 읽을 때, 그때마다 시시비비를 따지고 헛점을 찾아 가르치려드는 병폐가 나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음을 나도 '잘' 알고 일다. 일종의 직업병의 흔적이요, 오랜 세월 습(習)한 것임을.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것임을.

     요즘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한때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가르치다'를 '가르키다'로 대신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지식정보의 세계, 어제 참이었던 것이 오늘 거짓이 되는 경우를 많이들 본다. 그리하여 진위(眞僞), 정오(正誤)를 단언키도 어렵다. 정보의 빈곤이 아니라 정보의 홍수란 말도 고어(古語)가 된지 오래되었다. 이젠 수없이 많은 거짓 정보들에 파묻혀있거나 가려 있는 참지식을 찾아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가르침과 기름의 행위인 교육은 진작 가리킴, 지적의 행위로 재개념화되었어야 했다. 진리의 문에 도달하는 길, 그 문을 열어줄 열쇠가 될 핵심 개념과 용어[key words]를 가리켜주는 것이 '신'교육이 아닐까. 먼저 나 자신부터 조금씩 조금씩 시도해야겠다.

2023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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