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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7] 삼락(三樂): 조선 유학자

by I'mFreeman 2023. 10. 23.

2. 조선 유학자들의 삼락

 
   다산, 추사, 상촌 선생의 삼락, 그 출전과 원문을 보기 위해,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았다. 수많은 문헌에 이 말이 실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맹자의 '군자삼락'이 주를 이루고, 간간히 우리 옛 어른들 말씀도 있음을 본다. 아호 또는 당호로도 써였음도 본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이 말했다는 "일독(一讀) 이색(二色) 삼주(三酒)"의 출처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추사 선생 자신이 금석학, 고증학의 대가이기에, 고증될 수 있을 때까지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 대신에, 대동야승(大同野乘)≫란 책에 실려 있는 '사락'(四樂)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목은 이색 선생 영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려의 명신이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이 남긴 <군자유삼락>이란 시도 있다(목은시고[牧隱詩藁]) 제15권). 그 원문을 끌어 아래에 옮긴다. 그 뒤에 한글역문을 덧붙인다.
 

君子三樂(군자유삼락), 自家及天下(자가급천하). // 俯仰旣無歉(부앙기무겸), 保此神明舍(보차신명사), 愧怍無從生(괴작무종생), 聲名遍夷夏(성명편이하). // 悅親兄弟和(열친형제화), 英才盡陶冶(영재진도야), 致用竟成功(치용경성공), 優游在朝野(우유재조야). // 謳歌終吾生(구가종오생), 誰歟列風雅(수여렬풍아).

 
    <군자(君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자기 집으로부터 천하에 미치네. //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을 제, 이 착한 마음을 잘 보존만 하면, 부끄러움이 나올 데가 없을 거고, 훌륭한 명성이 천하에 퍼지리라. // 부모 형제에 효도하고 화목하고, 천하의 영재를 모두 교육시키고, 재능 다하여 성공을 거둔 다음엔, 조야 사이에 한가로이 지내면서, 내 생애 다하도록 노래나 할 텐데, 그 누가 풍아에 내 노래 넣어 줄꼬."
 
    맹자의 삼락에서 둘째를 가장 먼저 그리고 길게 말하고, 첫째와 셋째는 그보다 짧게 말한 뒤에, 은거 중인 자신의 심정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 착한 마음'을 보존함이 무엇보다 중한 것이라 했다. 그 마음을 지키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다산 선생 표준 영정 ⓒ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삼락은 ≪여유당전서≫ 제13권(문집) 기(記)의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에 남아 있다. 기(記)란 기행문을 말하니, <유수종사기>란 수종사란 고찰을 노닐며 생각났던 것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원문을 인용한 뒤에 한글 역문을 옮긴다.
 

幼年之所游歷(유년지소유력), 壯而至則也(장이지칙일락야), 窮約之所經過(궁약지소경과), 得意而至則一樂也(득의이지칙일락야), 孤行獨往之地(고행독왕지지), 攜嘉賓挈好友而至則一樂也(휴가빈설호우이지칙일락야). ⓒ 다산학술문화재단(2012)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현달하여 찾아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고,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땅을 좋은 손님들과 맘에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다." 어릴 때 놀았던 적이 있는 곳, 궁하게 살던 곳, 홀로 가던 곳, 이 세 곳을 장성하여, 금의환향하여, 벗들과 동행하는 것[至/經過/至]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이삼...을 말하지 않았으니, 우열을 둔 것 같지 않다. 이때 다산 선생은 21세의 젊은 진사였다. 득의(得意)의 시절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다산이 서학쟁이로 몰려 자신과 형제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귀향가야 했다. 형이자 지기였던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신은 장기에서, 또 강진에서 유배생활에서 해야 했다. 그 장구한 세월, 고난의 삶에서 다산은 무엇에서 즐거움을 맛보았을까. 그는 그 실의(失意)의 삶에 굴복하지 않았다. 몽매한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그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저술에 매진했다. 유배에서 풀렸을 때, 다산의 손에는 500여권의 저술이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멀고도 먼 강진 땅에서 그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왔다. 좌절과 분노로 가득했을 고난의 삶을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조선 조 학자 권별(權鼈)이 1670년 엮은 ≪대동야승≫(大同野乘)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해동잡록>(海東雜錄) "김안국" 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退居梨川村墅(퇴거이천촌서). 南野中有高丘斗起(남야중유고구두기). 朴上舍承璟築小亭于其上(박상사승경축소정우기상). 扁以四樂(편이사락). 先生問其義(선생문기의). 答云(답운).  "물러나 이천(利川) 농막에 살 때, 남쪽 들 가운데 높은 언덕이 둥그렇게 솟아 있는데 상사(上舍) 박승경(朴承璟)이 작은 정자를 그 위에 짓고 사락(四樂)이라는 편액(扁額)을 걸었다. 선생이 그 뜻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主占閑逸一樂(주점한일일락).
賓盡佳良二樂(빈진가량이락).

野禾茂稼三樂(야화무가삼락).
川饒魚鰕四樂(천요어하사락).

 
    그 뜻은 이렇다. “주인은 한가롭고 편안함을 누리고 있으니 첫째 즐거움이요, 찾아오는 손님이 모두 훌륭한 현량(賢良)들이니 둘째 즐거움이요, 들에는 곡식이 풍성하니 셋째 즐거움이요, 시내에는 고기 새우가 푸짐하니 넷째 즐거움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살던 곳에서 편액의 글뜻을 물은 '선생'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요, 그 물음에 답한 사람은 상사 박승경이다. 김안국과 박승경의 이런 문답이 권별에 의해 <해동잡록>에 실린 것이다. 상사 박승경이 말한 즐거움 넷은 한가로움과 편안함, 훌륭한 손님의 방문, 들의 풍성한 곡식, 시내의 푸짐한 물고기를 말했다. 자신에서 시작하여, 관계로 잇고, 물산의 넉넉함으로 맺었다. 모두 작고 소박한 것들이다. 선인(先人)들의 담박한 삶을 알겠다.
 

신흠 선생 묘역과 신도비&amp;amp;amp;amp;amp;amp;nbsp;ⓒ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와 비슷한 취지의 즐거움을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도 말했다. "오월동류"란 글에서, 상촌 신흠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한시, 그 한시의 출처라는 <야언>(野言)을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삼락 둘을 찾았다. 행운이었다. 하나는 짧은 문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장이 길었다. 젊은 시절 몇 차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의정까지 지낸 상촌 선생, 벼슬에서 물러나 산중의 전원생활을 꽤 오랫동안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삶의 처지가 비슷할 뿐더러 그 내용도 공감되는 것이 적지 않아, 그가 말한 삼락이 마음에 더 깊이 들었다. <야언>에서 짧게 말한 삼락은 아래와 같다.
 

閉門閱會心書(폐문열회심서).
開門迎會心客(개문영회심객).
出門尋會心境(출문심회심경).
此乃人間三樂(차내인간삼악).


   "문을 닫고[폐문] 마음에 맞는 책[심서]을 읽는 것, 문을 열고[개문] 마음에 맞는 손님[심객]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출문] 마음에 맞는 경계[심경]를 찾아가는 것,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문을 닫음과 엶, 그리고 마음에 맞는 책, 손님, 경치와의 만남이 인간, 곧 자신의 즐거움 셋이라는 것이다. 이 글 뒤에 몇 문장이 있고 그 다음에서 시골사는 선비의 삼락을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良宵宴坐(양소연좌) 篝燈煮茗(구등자명) 萬籟俱寂(만뢰구적) 溪水自韻(계수자운) 衾枕不御(금침불어) 簡編乍親(간편사친)

一樂也(일락야).
風雨載途(풍우재도) 掩關却掃(엄관각소) 圖史滿前(도사만전) 隨興抽檢(수흥추검) 絶人往還(절인왕환) 境幽室寂(경유실적)
二樂也(이락야).
空山歲晏(공산세안) 密雪微霰(밀설미산) 枯條振風(고조진풍) 寒禽號野(한금호야) 一室擁爐(일실옹로) 茗香酒熟(명향주숙)
三樂也(삼락야).
 

    "어느 쾌적한 밤 편안히 앉아, 등불 빛을 은은히 하고 콩을 구워 먹고, 만물은 적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책을 잠깐씩 보기도 하는 것,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사방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문을 닫고 소제한 뒤, 책들을 앞에 펼쳐놓고, 흥이 나는 대로 뽑아서 검토해 보는데, 왕래하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 끊어져, 온 천지 그윽하고 실내 또한 정적 속에 묻힌 상태,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 빈 산에 이 해도 저무는데, 분가루 흩뿌리듯 소리없이 내리는 눈, 마른 나무가지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 들에서 우짖는데, 방 속에 앉아 화로 끼고, 차 달이며 술 익히는 것,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물질의 풍요조차 말하지 않은 '선택한' 청렴한 삶이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자연의 미세한 변화에 귀기울이며 사는 삶, 화로의 온기, 차의 향과 맛, 익어가는 술, 책을 보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그런 삶이다. ''을 읽었는데, 어느새 그 글이 심안(心眼)을 통해 '그림'으로 그려진다.
 

3. 樂(락): 즐거움 vs. 즐김, 또는 즐겁다 vs. 즐기다

 

    樂, 이 한 글자가 소리로는 악, 락, 요, 셋으로 읽히니, 그 뜻을 다시 알아본다. 민중서림에서 간행한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이 풀이한 이 글자의 뜻과 어원은 대략 이러하다.

 

  <자해> [一]  ① 풍류(음악). ② 아뢸(연주할). ③ 악인(樂人). ④ 악기. ⑤ 낳을. [二]  ⓛ 즐길. ② 즐거움. ③ 즐거울. ④ 즐겁게할. [三]   좋아할(마음에 들어 바람, 바라는 바). 
<어원> 상형. 白은 큰 북, 백의 좌우에 있는 幺(작을 요) 둘은 작은 북, 木은 받침대로서, 악기를 본뜬 모양. 음악이란 뜻에서 즐겁다의 뜻이 파생됨.

 

   락으로 읽을 때 1의 '즐기다'는 동사다. 그 명사는 '즐김'이다. 2의 '즐거움'은 명사다. 그 형용사가 3의 '즐겁다'다. 즐거움과 즐김, 두 명사 사이에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음이 느껴진다. 또, '즐거워하다'라는 말도 있다. 즐겁게 여기다란 뜻이다. 즐기다와 뜻이 상통하는 듯하다. 영어로는 enjoy(en+joy)라고 하겠다. 명사 joy(기쁨)에 접두사 en-(make, 만들다)가 붙은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것을 경험함에서 쾌, 행복, 이득을 느낌의 뜻이다. 명사로는 enjoyment, 곧 즐김, 향유다. 樂자를 '즐거움'과 함께 '즐김'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맹의 삼락이 '즐거움'에 가깝다면, 상사와 상촌의 사락과 삼락은 '즐김'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즐거움 또는 즐김(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건강, 가족(가정), 친구 등을 사람들은 말한다. 다시 공자의 말씀을 들어본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유익(보탬)이 있는 삼락[益者三樂]과 손실(덞)이 있는 삼락[損者三樂]이 있다고 하셨다(≪논어≫ <계씨> 편).

 

節禮樂(낙절애락), 樂道人之善(낙도인지선), 樂多賢友(낙다현우), 矣(익의).
驕樂(낙교락), 樂佚遊(낙일유), 樂宴樂(낙연락), 矣(손의).

 

    樂자를 모두 락으로 읽고 '즐김'으로 풀이한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절제된 예와 악을 즐기는 것, 사람들의 선함을 이끌어냄을 즐기는 것, 어진 벗이 많음을 즐기는 것, 이것이 곧 유익한 즐김 셋이다. 교만과 쾌락을 즐기는 것, 하릴없이 마냥 노니는 것, 연회의 쾌락을 즐기는 것, 이것은 곧 손실이 있는 즐김 셋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나의 일생에서 내가 느낀/느끼는/느낄 '즐거움' 셋은 무엇일까. 건강한 삶, 부모형제의 무고, 화목한 가족/가정, 손자/손녀 새 생명의 탄생,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회적 지위와 명성 등, 이런 것이 있는 삶은 분명 크나큰 즐거움이다. 셋으로 제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또, 물어본다. 내가 '즐긴/즐기는/즐길 것' 셋은 무엇일까. 스스로 던진 이 물음에 대해 ' 잠시나마 깊이' 생각해 본다. 하지만 선뜻 답할 수 없어 일단 유보한다.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는 그 날, 몇 해 남지 않은 그 날이 오기 전에 해답을 찾기로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고난의 삶조차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보여준 품격 있는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싶다. 언젠가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2023년 10월 17일(화)
ⓒ 2023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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