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14] 노년의 삶, 할 것과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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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14] 노년의 삶, 할 것과 하지 말 것

by I'mFreeman 2023. 10. 30.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듯 60세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몸의 기력도 나날이 쇠해지고 마음도 늙어 예전같지 않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 덤성덤성하고 남은 것마저 점점 희어간다. 얼굴에 주름도 늘고 깊어지고 검버섯 같은 것도 새로 돋아난다. 본시 지금까지 거울 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넉넉해도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기만 해 아예 보지 않는다. 책을 읽어도 덮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젊었을 때 득의(得意)의 호시절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오리라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일뿐이다. 그 시절의 일들이 추억으로만 남았고, 그 기억마저 흐릿하다.
 
    이처럼 초로(初老)의 노인이 되어 가니, 노년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들, 딸 모두 장성하여 내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기다리며 할아버지 될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 왔건만, 그때 꿈꾸었던 그런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날이 올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할배로 살아남기 위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문득문득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잠언서나 지혜서나 명상록 같은 책들은 참 많다. 예전에 신약서 <잠언> 읽기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 하루 하나씩 읽으면 딱 한 달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읽다 말았다. 5여년 전에는, 노년의 삶에 대한 책 두 권을 샀다. 하나는 이미 읽었다. 건진 것이 없어 보람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번역서다. 지금 읽고 있다. 매끄러운 번역에도 잘 읽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옛 은사님이 하버드대학에서 종단연구를 하여 얻은 결과를 정리한 것도 읽어보았다. 마음에 퍽 와닿지는 않았다. 우리네 노년과 서양인의 노년 간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어 보여서다.

 

원저 1981년, 역서 2015년, ⓒ 포이에마


    오늘 우리 옛 어른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려 생각하고 그럴만한 글을 찾던 중에,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생각났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조선일보에 칼럼 글로 쓴 글이다. 그때 그 뜻이 좋아 큰 글씨로 입력하여 어머니에게 드린 적도 있다. 오늘 다시 그 글을 꺼내 보니, 여전히 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보니 ≪암서유사≫(岩栖幽事)란 책에 나오는 글이란다. 글 제목이 <다소잠>(多小箴)이란 것은 기억에 있다.
 
    이 글은 많이 할 것과 적게 할 것, 할 것과 말 것에 대한 잠언의 글이다. 정 교수가 한 것처럼, 정 교수가 옮긴 한글역문을 앞에 두고, 원문을 뒤에 둔다. 다만, 원문을 음역하고, 원문에 표점한대로 한글역문에도 쉼표와 마침표를 넣었고, 조목마다 앞에 번호를 붙였다. 그 뒤에 나의 개인적 상황이나 소감을 매단다.
 

[1] 은 적게 마시고, 은 많이 먹어라.
[少飮酒(소음주), 多食粥(다식죽).]
[2] 채소는 많이 먹고, 고기는 적게 먹어라.
[多茹菜(다여차), 少食肉(소식육).]
[3] 은 적게 열고, 은 많이 감아라.
[少開口(소개구), 多閉目(다폐목).]
[4] 머리는 자주 빗고, 목욕은 적게 하라.
[多梳頭(다소두), 少洗浴(소세욕).]
[5] 여럿이 지냄은 적게 하고, 홀로 자는 것을 많이 하라.
[少群居(소군거), 多獨宿(다독숙).]
[6] 은 많이 읽고, 재물은 적게 쌓아 두라.
[多收書(다수서), 少積玉(소적옥).]
[7] 명예는 적게 취하고, 욕됨은 많이 참아라.
[少取名(소취명), 多忍辱(다인욕).]
[8] 착한 일은 많이 행하고, 높은 지위는 적게 구하라.
[多行善(다행선), 少干祿(소간록).]
[9] 마음에 드는 곳은 다시 가지 말고, 좋은 일은 없음만 못한 듯이 여겨라.
[便宜勿再往(편의물재왕), 好事不如無(호사불여무).]

 
    많이 할 것과 적게 할 것을 8항목에서 말하고 있다.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을 먼저 말하고, 바로 이어 '많이' 할 것과 '적게' 할 것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적게 할 것을 많이 하고, 많이 할 것을 적게 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마지막에는 아예 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 이 말대로 하고 있는지 따져본다. [1]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는 날이 거의 없고 죽[밥]은 많이 먹는다. 가족들과 함께 마시는 날이 조금 더 있어야 하고, 1일 1식에서 1일 2식 정도가 좋겠다. [2] 채식주의자여서 고기는 일절 먹지 않고 풀만 먹는다. 채소는 더 많이 먹을 필요가 있지만, 고기를 먹을 생각은 없다. [3] 말과 봄을 줄여라. 판단이 서지 않는다. 노력은 하고 있다. [4] 스스로 빗질한지 오래됐고, 목욕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게을러서다. 지금보다 더 자주 해야 한다. [5] 딱 그렇다. 남과의 만남은 거의 없고, 거의 매일 홀로 잔다. [6] 책을 많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읽고 있다. 재물은 이제 쌓을 일 없고 집 한 칸밖에 없다. [7] 명예를 취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이제 구하지도, 구할 수도 없다. 욕됨은 잘 참지 못했다. 내면의 힘이 약해서다.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 [8] 그간 착한 일을 조금은 했다고 자부한다. 지위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은 그대로 유지만 하고, 잘 해오지 못한 것은 노력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곳을 다시 가지 말라는 말은 마음에 드는 곳이 그곳말고도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좋은 일은 없는 듯이 여기라는 말씀은 복을 받기보다, 더 많이 받기보다 아끼라[惜福]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도 있지 않은가. 좋은 일이 많으면 나쁜 일이 뒤따른다. 복(福)이 화(禍)가 된다.
 
    이 글을 읽은 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2023년 10월 30일(월)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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