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은 문법(grammer), 변증법(dialectic)/논리학(logic), 수사학(rhetoric), 산술(arithmetic), 기하(geometry), 천문(astronomy), 음악(music), 이 일곱 '과목'을 배웠다. 앞의 셋을 '3학'(trivium)이라 하고, 뒤의 넷을 '4과'(quadrivium)라 한다. 이들 일곱 과목은 노예가 아닌 자유민이 배우는 것이기에, '7자유학과'(seven liberal arts)라 한다. 인문학(humanities)과 같은 것이다. 이 7과목을 배운 뒤에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신학, 의학, 법학이었다. 신학자, 의사, 법률가의 양성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특수목적대학인 셈이다.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science)이나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등의 사회과학(social sciences)을 가르친 것은 19세기 후반부의 일이다. 철학과(philosopy)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였기에, 독자적인 학문으로 인정되었다. 철학에서 분과된 것이다.
우리네 옛 사람들은 서당에서 천자문, 사자소학, 계몽편, 동몽선습, 통감 같은 '책'을 배웠다. 본격적인 공부는 소학(小學)에서 시작했다. 8세가 되면 모두 소학을 배웠다고 한다. 15세가 되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웠다고 한다. 사서란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 논어(論語)를 이르는 것이요, 삼경이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주역(周易)을 이르는 것이다. 칠서(七書), 곧 책 일곱을 배우는 것이다.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맨먼저 배우는 책은 대학(大學)이다. 곧 '작은 학문'(소학)에서 시작하여 드디어 '큰 배움'(대학)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대학≫이란 책에 맨먼저 나오는 글이 "明明德(명명덕), 親民(친민), 止於至善(지어지선)"이다. 이른바 삼강령이다. 그 뒤에 "格物致知(격물치지), 誠意正心(성의정심), 修身齊家(수신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란 글이 이어진다. 팔조목라 한다. 오늘 쓰려는 글은 "관물"(觀物), 곧 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팔조목, 특히 격물(格物)이 말하는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팔조목의 뜻은 이렇다. "물(物)을 격(格)하면 앎[知]에 이르고[致], 앎에 이르면 뜻[意]이 성실해지고[誠], 뜻이 성실하면 마음[心]이 바르게[正] 되고, 마음이 바르면 몸[身]이 닦이고[修], 몸이 닦이면 집안[家]이 다스려지고[齊], 집안이 다스려지면 나라[國]가 다스려지고[治], 나라가 다스려지면 세상[天下]이 평탄[平]해진다."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행위가 있고 그 행위의 대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격(格)·지(至)·성(誠)·정(正)·수(修)·제(齊)·치(治)·평(平)이 행위다. 함(타동사)과 됨(자동사)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物)·지(知)·의(意)·심(心)·신(身)·가(家)·국(國)·천하(天下), 이 또한 행위의 대상과 그 결과(상태)가 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각각 앞의 둘을 제외하고 남은 앞의 6개를 행위적 사실이라 하여 ‘사’(事)로, 뒤의 6개를 대상적 존재라 하여 ‘물’(物)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둘을 합하여 우리는 '사물'(事物 thing)의 뜻으로 쓰지만, 본래의 뜻은 '사'는 일이요, '물'은 만물이다.
이 글에서 나의 관심은 "格物致知(격물치지)"에 있다. "물(物)을 격(格)하면 앎[知]에 이른다[致]."는 말을 뒤집어 보면 이렇다. "앎에 이르려면 물을 격해야 한다." 물(物)을 알려면 그 물을 격(格)해야 한다. 이 말이 어려운 것은 이 격(格)이란 동사, 한 글자의 뜻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격물의 ‘격’이란 말의 뜻 풀이는 학자와 학파에 따라 다양하다. “격"은 "오는 것(格來也)”[정현(鄭玄)], “제거하는 것(格去也, 物外物也)[장재(張載)], "이르는 것(格至也)"[정이(程頤)와 주희(朱熹)], " 헤아리는 것"(格度也, 猶曰品式也)[호안국(胡安國)], “바로잡는 것"(格正也, 正其不正, 以歸於正也)[왕수인(王守仁)] 등이 중국 유학자들의 해석이다. "궁구(窮究)한다."[이황(李滉)]도 있다. 더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뒤의 "앎"을 "지식"이라고 보는 한, 그 지식은 물(物)을 아는 것, 물에 대한 지식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격"(格)이란 만물(萬物)을 "헤아려 궁구(窮究)한다"는 뜻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물을, 그 물에 관한 것을 그 끝까지, 깊이, 속속들이 헤아리고 파헤쳐 연구함"이란 뜻일 것이다. 우리네 옛 어른들은 격물(格物)을 대신하는 말로 관물(觀物)이란 말을 썼다. 관물이란 천지만물을 '관찰함'이다. 視(시), 看(간), 見(견) 같은 말 대신에 觀(관)을 썼다. 영어로는 see보다 look이다. observe다. 관세음(觀世音)이란 말처럼, 살피고 따져 보고듣는 행위인 것이다.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한 말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 말을 한다. 우리네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방법에 관해서다. 우주와 자연, 하늘과 땅, 만물을 알기 위해 격물하고 관물했다. 그 이야기 둘을 나누려 한다. 그 하나는 고려 시대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백운거사(白雲居士)를 자호(自號)하면서 기록한 글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 하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에 가서 코끼리를 보고 남긴 글이다.
1. "구름", 백운거사의 관물
아래의 글은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20권 <어록>(語錄)에 실려 있다. 아래의 글은 내가 범주 "질서(疾書)"의 12번째로 쓴 글, "이름[名], 그리고 작호(作號)"에서 인용한 글의 뒷 부분이다. 이 둘을 합치면 <어록>(語錄)의 전문이 된다. 모두 고전번역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가 조금 고쳤다. 이제 이규보의 아호 "백운거사"에 대한 설명, 곧 "호설"(號說)을 읽어본다.
이씨 늙은이는 이와 다르니, 사방으로 떠돌아다녀 거소가 일정하지 않고, 한 물건도 소유한 것이 없으며, 소득의 실상도 없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 그 자호(自號)를 무엇이라 해야 좋을꼬. 어떤 이가 초당선생을 지목하였지만, 나는 두자미 때문에 사양하여 받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초당은 잠깐 우거한 곳이요 상주한 곳이 아니다. 우거한 곳으로 호를 삼는다면 그 호가 또한 많지 않겠는가.
이씨 늙은이[李叟(이수)]라고 했다. 제43권에 실려 있는 서(序)와 연보(年譜)를 쓴 이의 이름도 이수(李需)다. 공교롭다. 아무튼 이씨 늙은이는 곧 이규보 자신이다. 그가 이와 다르다고 함은 거소가 일정치 않았음, 소유한 물건이 없음, 얻은 뜻도 없음이다. 옛 사람(9명)에 미치지 못한다고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호를 짓는 방법 셋,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가 제안한 "초당선생"(草堂先生)이란 호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특히 두자미, 곧 두보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평생토록 오직 거문고와 술과 시, 이 셋을 매우 좋아하였기에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자호하였다. 그러나 거문고를 잘 타지도 못하고, 시도 잘 짓지 못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면서, 이 호를 누린다면 세상에서 듣는 사람들이 크게 웃지 않겠는가. 그래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고쳤다.
거문고와 술과 시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작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이 셋 모두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호를 다시 지을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니까 실상은 개호(改號), 곧 호를 고침이다. 그리하여 "백운거사"를 호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장광설, 곧 백운거사로 자호한 까닭에 대한 글이 핵심이다.
어떤 이가 이르기를, “자네는 장차 청산에 들어가 백운에 누우려는가. 어찌 자호를 이처럼 하였는가.”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그런 것이 아닐세. 백운은 내가 사모하는 것일세. 사모하여 배우면 설사 그 실상을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거기에 가깝게는 될 것이네.
백운거사 (白雲居士)란 호를 짓고 산에 들어가 살 작정이냐고 어떤 이가 했다. 거사(居士)란 말이 산이나 들에 은거하여 사는 사람을 뜻하니,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힐란하는 듯한 물음에 "백운"을 사모한다 했다. 배울 것이 있다 했다. 그 '실상'을 모두 배우지 못한다 해도 애써 노력하면 가까워질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무릇 구름이란 물체는 한가히 떠서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나부껴 동서로 떠다녀 그 형적이 구애받은 바 없네. 경각에 변화하면 그 끝나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네. 유연(油然)히 펴지는 것은 곧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기상이요, 염연(斂然)히 걷히는 것은 곧 고인(高人)이 세상을 은둔하는 기상이며, 비를 만들어 가뭄을 구제하는 것은 인(仁)이요, 오면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은 통(通)이네. 그리고 빛깔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구름의 정색이 아니요, 오직 화채(華彩) 없이 흰 것만이 구름의 정상인 것이네.
구름이란 물(物)을 관(觀)하여 얻은 것을 길게 말한다. 구름이란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뿐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매이지 않고, 구애받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유자재함을 본 것이다. 구름이 퍼지는 것에서 세상 나가는 군자(君子)의 기상을, 구름이 걷히는 것에서 은둔하는 고인(高人), 고관대작의 기상을 보았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림에서 구름의 어짊[仁]을,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음에서 구름의 상통(相通)을 보았다. 구름의 빛깔이 때에 따라 바뀌지만 그것은 현상일 뿐임을, 구름의 진정한 빛깔 흰 색에서 어떤 꾸밈도 필요하지 않은 그 본질, 본바탕이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덕과 빛깔이 저와 같으니, 만일 저를 사모해 배워서 세상에 나가면 만물에 은덕을 입히고, 집에 들어앉으면 허심탄회하여 그 흰 것을 지키고 그 정상에 처하여 무성무성(無聲無色)하여 무한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렇게 되면 옛 사람의 소득의 실상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였다.
구름의 덕에서 밖으로는 만물에 은덕을 베풀기, 안으로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지키기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어떤 소리도, 어떤 빛깔도 없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무한한 경지에 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지은 호가 백운거사라는 것이다.
어떤 이가 “거사라고 칭함은 어떤 경우여야 하는가.” 하고 묻기에, “산에 거하거나 집에 거하거나, 오직 도(道)를 즐기는 자라야 거사라 칭할 수 있는데, 나는 집에 거하며 도를 즐기는 사람이다.” 하였다. 어떤 이가 “이와 같음을 알고 보니 자네의 말은 통달한 것일세. 기록해 두어야겠네.” 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적는다.
마침내 자호한 백운거사의 뜻을 들은 어떤 이의 물음에 '거사'(居士)는 거처하는 곳에 구해받지 않고 오직 '도(道)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짧게 단언했다. 자신은 집에 거처하며 도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문답을 듣고 있던 이가 탄복하며 '가히 기록으로 남길만하다' 상찬하니, 이를 기록하여 남긴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글을 적게 되었다고 했다.
이 글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흰구름, 곧 백운(白雲)에 대한 장광설이다. 구름과 그 덕을 찾아내고 그 실상대로 살겠다는 뜻을 밝힌 글이다. 관물(觀物)하여 구름의 성질을 알아내고, 그 속에서 군자의 기상을 읽어낸다. 인(仁)과 통(通)의 덕을 찾아낸다. 실로 벼슬을 영의정까지 역임한 뒤 은거하는 동안 지은 호이니, 더욱 값지다 하겠다. 이와 같이, 옛 어른들은 자연과 외물(外物)을 '그냥' 보는 법 없이, 가까이 다가가 세밀히 보고[觀] 요모조목 하나하나 살펴[察] 보았다. 그 속에서 크든 작든 배움과 지혜를 얻었다. 이 모두 옛 어른들의 공부법, 격물(格物) 곧 관물(觀物)의 결과일 것이다.
2. "꼬끼리", 연암선생의 관물
아래의 글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산장잡기>(山莊雜記)에 실려 있는 글 중의 하나다. 제목은 상기(象記)다. 청나라에 가서 코끼리를 보고 남긴 글이다. 1780년(정조 4년)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고종의 70세 진하사(進賀使) 정사(正使) 가 되어 북경으로 가게 되자, 박지원이 수행해 압록강을 거쳐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1780년 6월 25일-10월 27일). 이때 견문한 것을 정리해 쓴 책이 ≪열하일기≫다. ≪연암집≫(燕巖集) 제14권 별집(別集)이다. 이 글의 한글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며칠 전 아내가 내게 사준 ≪비슷한 것은 가짜다≫ 개정판(정민, 2020)을 읽고 있다. 첫 글이 바로 이 글 상기(象記)다. 편의를 위해 문단을 구분했다.
만일 괴상스럽고 잡스럽고 우습고 기이하며 거룩한 것을 구경하려면 먼저 선무문(宣武門) 안에 있는 상방(象房)에 가 봐야 할 것이다. 내가 북경에서 코끼리를 본 것이 열여섯 마리인데, 모두 쇠사슬로 발을 묶어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코끼리 두 마리를 열하 행궁(行宮) 서쪽에서 보았던 바 온 몸을 꿈틀거리면서 걸어 가는 것이 풍우(風雨)가 움직이는 듯 몹시 거창스러웠다. 내가 언젠가 동해(東海)에 나갔을 때 파도 위에 말처럼 우뚝우뚝 선 것이 수없이 많으며 집채같이 큰 것이 물고기인지 짐승인지 해돋기를 기다려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해가 돋기도 전에 그것들은 바닷속으로 숨어 버렸었다.
이번에 코끼리를 십보 밖에서 보았는데 그때 동해에서 보았던 것과 방불할 만큼 크게 생겼다.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약대 무릎에, 범의 발톱에, 털은 짧고 잿빛이며 성질은 어질게 보이고,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장(丈) 남짓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 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 넣는다.
때로는 코를 입부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다시 코 있는 데를 따로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코 생긴 모양이 이럴 줄이야 누가 뜻했으랴. 혹은 코끼리 다리가 다섯이라고도 하고, 혹은 눈이 쥐눈 같다고 하는 것은 대개 코끼리를 볼 때는 코와 어금니 사이를 주목하는 까닭이니, 그 몸뚱이를 통틀어서 제일 작은 놈을 집어가지고 보면 이렇게 엉뚱한 추측이 생길 만하다. 대체로 코끼리는 눈이 몹시 가늘어서 간사한 사람이 아양을 부리는 눈 같으나 그의 어진 성품은 역시 이 눈에 있는 것이다. 강희 시대에 남해자(南海子)에 사나운 범 두 마리가 있었는데, 길을 들일 수 없어서 황제가 노하여 범을 코끼리 우리로 몰아 넣게 했더니, 코끼리가 몹시 겁을 내어 코를 한 번 휘두르자 범 두 마리가 제 자리에서 넘어져 죽었다고 한다. 코끼리가 범을 죽이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범의 냄새를 싫어하여 코를 휘두른 것이 잘못 부딪쳤던 것이다.
아아, 세간 사물(事物) 중에 털끝같이 작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찌 다 명령해서 냈을까보냐. 하늘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성질로 말한다면 건(乾)이요, 주재(主宰)하는 이는 상제(上帝)요, 행동하는 것은 신(神)이라 하여 그 이름이 여러 가지요, 또 일컫는 명색이 너무 친밀하다. 허물이 없이 말하자면 이(理)와 기(氣)로서 화로와 풀무로 삼고, 생장과 품부를 조물(造物)이라 하여 하늘을 마치 재주 있는 공장이에 비유하여 망치·도끼·끌·칼 같은 것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경(易經)》에 말하기를, “하늘이 초매(草昧)를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초매란 것은 그 빛이 검고 그 형태는 안개가 낀 듯하여 마치 동이 틀 무렵 같아서 사람이나 물건을 똑바로 분간할 수 없다 하니, 나는 알지 못하겠다. 하늘이 캄캄하고 안개 낀 듯 자욱한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무엇일까. 맷돌에 밀을 갈 때에 작고 크거나 가늘고 굵거나 할 것 없이 뒤섞여 바닥에 쏟아지는 것이니 무릇 맷돌의 작용이란 도는 것 뿐인데, 가루가 가늘고 굵은 데야 무슨 마음을 먹었겠는가.
그런데 설자(說者)들은 말하기를,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를 주지 않았다.” 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데 무슨 결함이라도 있는 듯이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이다. 감히 묻노니, “이를 준 자는 누구일 것인가.”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주었지요.”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하늘이 이를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다면, 사람들은, “하늘이 이것으로 먹이를 씹으라고 주었지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이를 가지고 물건을 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면, 사람들은, “이는 하늘이 낸 이치랍니다. 금수는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그 입을 땅에 구부려 먹을 것을 찾게 된 것이요, 그러므로 학의 정강이가 높고 보니, 부득이 목이 길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래도 입이 땅에 닿지 않을까 하여 입부리를 길게 해준 것이요, 만일 닭의 다리가 학과 같았다면 할 수 없이 마당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오.” 하고 말하리라.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대들이 말하는 이치란 것은 소·말·닭·개 같은 것에나 맞는 이치다. 하늘이 이를 준 것이 반드시 구부려서 무엇을 씹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면 코끼리에게는 쓸데없는 어금니를 주어서 입을 땅에 닿으려고 하면 이가 먼저 땅에 걸리니 물건을 씹는 데도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가.” 혹은 말하기를, “그것은 코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리라. 그러나 나는 다시, “긴 어금니를 주고서 코를 빙자하려면 차라리 어금니를 없애고 코를 짧게 한 것만 못할 것이 아닌가.” 했더니, 이때에야 말하는 자는 자기의 주장을 우겨대지 못하고 수그러졌다.
이는 언제나 생각이 미친다는 것이 소·말·닭·개뿐이요, 용·봉·거북·기린 같은 짐승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코끼리는 범을 만나면 코로 때려 눕히니, 그 코는 천하에 상대가 없으나 쥐를 만나면 코를 가지고도 쓸모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고 멍하니 섰다니, 이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하면 아까 말한 소위 하늘이 낸 이치에 맞다고는 못할 것이다. 대체로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천하 사물이 코끼리보다도 만 배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역경》을 지을 때 코끼리 상(象) 자를 따서 지은 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하게 하려는 것이다.
연암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 먼저 간 곳은 청나라 황제가 있는 곳 북경이다. 마침 황제가 행궁이 있는 열하로 피서가고 없었다. 이때 북경에 있는 상방을 가서 코끼리 12마리를 보았던 모양이다. 쇠사슬로 묶여 있어 움직이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이다. 다시 열하로 가서 코끼리 2마리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이다. 코끼리의 움직임, 크기, 몸뚱이, 꼬리, 무릎, 발톱, 털, 성질, 소리, 귀, 눈, 어금니의 크기와 길이, 코의 길이와 부리와 코끝, 코의 생긴 모양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보았다. 눈에서 어진 성품까지 보았던 것이다. 이런 관찰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만물의 이치라고 하는 말들을 통박한다. 세상 사람들의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은 늘상 보던 것에만 생각해서라고 했다. 처음 보는 것에까지 생가이 미치지 못해서라고 했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지극히 복잡하다고 했다. 주역을 지을 때 상(象 image) 자를 딴 것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구름[雲]이나 코끼리[象]를 보지만, 옛 사람들처럼 보지는 못한다. 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구름 같은 것이야 고개를 들기만 해도 볼 수 있다.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 것은 이제 동물원이나 수족관 같은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다. 그런 곳에 가기면 볼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구름을 보며 선비의 기상이나 덕(德)을 읽어낼 사람, 꼬끼리의 움직임부터 생김새와 성질까지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얼마나 있겠는가. 옛 사람들만큼 세밀하게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아이들 몫일 뿐, 어느 누구도 제 의사로 이런 글을 짓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제한된 탓에 그 밖의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사람들은 볼 것이 너무 많아 여유롭게, 천천히, 하나하나, 깊이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고듣는다. 닿고 맡고 맛보는 것도 너무도 많다. 천지자연만이 아니라 인공의 외물까지 온 세상이 우리를 자극한다. 그리하여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도, 고개 숙여 땅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마저도 그냥 보기만(視 see) 할 뿐 세밀히 들여다 살펴보지(觀 look) 않는다. 그저 들을(聞 hear) 뿐 귀기울여/귀에 담아 듣지(聽 listen) 않는다. 생각도 깊이 하지 않는다.
옛 어른들은 격물, 곧 관물로써 세상을 이해했다. 무엇 하나 허투러 보지 않았다. 그 속까지 속속들이, 그 궁극에까지 이르러 깊이 헤아려보고 파헤쳐보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지난날은 틀렸고 지금이 옳은가[昨非今是]. 사람이 발달(development)하기만 하는 것일까. 역사가 진보(progression)하는 것일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물음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023년 11월 1일(수)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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