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지으려면 모름지기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보고들을 때마다 몇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무엇을, 무엇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 글을 잘 지을 수 있다는 말일까. 생각을 어떻게 해야 글짓기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일까. 생각을 많이 하기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생각에 대해 생각해본다. 심리학의 용어로는 '초인지'(metacognition)다. 생각이란 생각하는 행위(동사)다. 생각은 외물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다. 또,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이 자극이 되어 또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마음에서 생기는 그 무엇(명사)이기도 하다. 이때 말하는 생각이란 곧 무엇을 생각하는 행위를 거쳐 마음 속에 갖게 된 어떤 것이다. 생각해낸 그 무엇을 우리는 남들에게 말하기도 하고, 글로 적기도 한다.
우리들 마음 속에서 생기는 생각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을 한 사람밖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이란 곧 객관(客觀)의 구체(具體)가 아니다. 주관(主觀)의 추상(抽象)이다. 생각은 생각한 이의 소유다. 스스로 뽑아낸 상(象), 곧 이미지(image)와 같은 것이다. 마음 속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이미지요 상징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온갖 고통과 번뇌의 바다에 빠진다. 오지각과 오해와 착각이 생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과 대립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그릇된 생각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잘' 생각해야 '잘' 살 수 있다. '잘'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 찾아본다. 구사(九思)가 그것이다.
율곡선생이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구사 각각에 매단 주(註 notes)가 있기에, 이를 취한다. 구사를 하나씩 들기에 앞서 이런 말이 있다. "進學益智(진학익지), 莫切於九思(막절어구사)." 배움에 나가 지혜를 더함에 있어, 구사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구사, 아홉 생각을 하나하나씩 살펴본다. 역문과 원문을 모두 앞에 둔다. 그리고 율곡선생의 주를 하나씩 읽어본다. 그리고 소략적이나마 내 생각도 붙여본다. (사자소학은 둘째와 셋째 글자 사이에 '必'(필) 자가 들어 있다.
이른바 구사라는 것은 (무엇을) 봄에 있어 눈 밝게 볼 것을 생각함이요, (소리를) 들음에 있어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함이요, 낯빛은 따뜻히 함을 생각함이요, 용모는 공손히 할 것을 생각함이요, 말함에 있어 충직히 할 것을 생각함이요, 일함에 있어 공경히 할 것을 생각함이요, 의문이 들면 물어봄을 생각함이요, 분함이 생기면 어려워짐을 생각함이요, 얻음을 보매 마땅함을 생각함이라.
所謂九思者(소위구사자), 視思明(시사명), 聽思聰(청사총), 色思溫(색사온), 貌思恭(모사공), 言思忠(언사충), 事思敬(사사경), 疑思問(의사문), 忿思難(분사난), 見得思義(견득사의).
우리가 생각할 것 중에 시(視)와 청(聽), 곧 봄과 들음을 맨먼저 말했다. 이어 안색과 용모를 말했다. 그 뒤에 말[言]과 일[事]에 대해 말했다. 다음으로 생각(의문)과 감정(분함)으로 이었다. 얻음을 끝에서 말했다. 이를 주석과 연계해서 본다. 편의상 앞에 번호를 붙였다.
[1] (무엇을) 봄에 있어 눈 밝게 볼 것을 생각함: "만물(萬物)을 봄에 있어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없으면, 곧 눈이 밝아져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視無所蔽(시무소폐), 則明無不見(즉명무불견).]
[2] (소리를) 들음에 있어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함: "말과 소리를 들음에 있어 귀를 가로막는 것이 없으면, 곧 귀가 밝아져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聽無所壅(청무소옹), 則聰無不聞(즉총무불문).]
시각과 청각은 보는 이와 듣는 이가 주인이다. 보고 듣는 것은 생활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감각이다. 제대로 보고듣는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明(명) 자의 뜻은 밝다, 밝히다, 밝음, 눈 밝음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눈 밝음의 뜻이고, 聰(총) 자는 귀가 밝다는 것이다. 이 두 자를 따서 총명(聰明)이란 말을 쓴다. 눈과 귀가 모두 밝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눈과 귀를 가리고, 가로막고, 어지럽히는 것들을 치우고 걷어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낯빛은 따뜻히 함을 생각함: "얼굴빛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분함의 기색이 없게 한다." [容色和舒(용색화서), 無忿之氣(무분지기).]
[4] 용모는 공손히 할 것을 생각함: "한 몸의 모습을 의젓하게 하여,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一身儀形(일신의형), 無不端莊(무불단장).]
안색과 용모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안색과 용모를 따로 말했으니, 안색은 얼굴표정을, 용모는 그 밖의 몸 동작과 자세를 말할 것이다. 낯/얼굴 빛을 따뜻이, 부드럽게 하고 있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5] 말함에 있어 충직히 할 것을 생각함: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바르고 믿음직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一言之發(일언지발), 無不忠信(무불충신).]
[6] 일함에 있어 공경히 할 것을 생각함: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공경하고 삼가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一事之作(일사지작), 無不敬愼(무불경신).]
말함과 일함은 남들과의 관계와 관계되는 것이다. 忠(충)자는 心(마음]과 中[가운데, 맞추다)이 모인 말이니, 마음에 맞음, 바름, 곧음의 뜻일 것이다. 事(사) 자는 일과 함께 섬기다의 뜻도 있다. 남에게 말할 때 바른 말만 하는지, 한 마디라도 삿된 말이나 빈 말이나 헛된 말[虛言]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일을 할 때 정성을 다하는지, 섬기는 자세로 임하는지, 주제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일 것이다.
[7] 의문이 들면 물어봄을 생각함: "마음속에 의문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깨닭은 이에게 나아가 자세히 물어, 모르는 것을 남겨두지 않는다." [有疑于心(유의우심), 必就先覺審問(필취선각심문), 不知不措(부지부조).]
[8] 분함이 생기면 어려워짐을 생각함: "분함이 있으면 반드시 징계해야 하니, 이치로써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有忿必懲(유분필징), 以理自勝(이리자승).]
스스로 배우든 스승에게 배우든, 무엇인가 배울 때 의문이 들 때, 선학(先學)에게 반드시 물어볼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야 함을 생각할 것,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혹 있지 않은지 생각할 것을 주문한 말씀이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의심이 들 때도 상대에게 물어 의심을 풀어야 한다. 혹 감정, 특히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행동을 잘못하여 곤경에 처하게 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이다. 내면의 자기 통제력을 길러 이겨내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9] 얻음을 보매 마땅함을 생각함: "재물을 마주하면 반드시 마땅함[義]과 이로움[利]의 구분을 밝혀, 마땅함에 부합된 뒤에 그 재물을 취해야 한다." [臨財必明義利之辨(임재필명의리지변), 合義然後取之(합의연후취지).]
재물이든 명예든 이로움이 있을 때 그것이 올바름과 부합하는지를 따져보고 밝히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올바름[義]과 이로움[利]이 함께 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움을 좇아 살지 말 것을, 올바름을 지키며 살 아갈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고도 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 첫 글도 이(利)와 인의(仁義)에 관한 문답이다. 도마 안중근(安重根) 대장군이 남긴 유묵에도 이 말이 나온다. "이익을 보면 옮음을 보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見危授命)
우리는 '어떤 생각'을 늘 '염두'(念頭)에 두고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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