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 "구사"(九思)에서 네 번째가 용모에 관한 것이다. 용모를 공손히 할 것을 잊지 않고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의 모습을 의젓하게 하고, 단정하고 씩씩하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남을 만나 처음 보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닌가. 외모보다 마음씨라 하면서도, 외모부터 본다.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옛 말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몸과 말, 글(씨)과 생각(판단)을 통해 그 사람의 품격을 판단했던 것이다. 몸[身]이 맨먼저다.
몸은 말없이도 말을 한다. 이 말을 '몸말'(body language)이라 한다. 몸이 하는 말이다. 입이 하는 말을 구어(oral/spoken language)라고 한다. 글이 하는 말을 문어(written language)라고 한다. 우리는 입말이나 글말과 함께 몸말로 소통한다. 몸의 자세(posture)와 몸의 동작(gesture)으로 말하는 것이다. 입말이나 글말로는 거짓을 말하기도 하지만, 몸말은 거짓을 모른다. 입말이나 글말보다 정직한 것이 몸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구사(九思)가 생각할 거리 아홉이라면, 구용(九容)은 몸가짐의 아홉이다. 이 역시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있는 말이다. 율곡선생이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구용에 대해서도 친절히 주(註 notes)를 달았다. 몸가짐 아홉을 말하가에 앞서 이런 말이 있다.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임에 있어 구용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收斂身心(수렴신심), 莫切於九容(막절어구용)]. 이렇게 말했으니, 구용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도 역문과 원문부터 본다. 그리고 율곡선생의 주를 하나씩 읽어 그 참뜻을 알아본다. 그리고 내 생각도 붙여본다. (사자소학에는 둘째와 셋째 글자 사이에 '必'(필) 자가 들어 있다.)
이른바 구용이라는 것은, 발의 모양은 무거움이요, 손의 모양은 공손함이요, 눈의 모양은 단아함이요, 입의 모양은 다물음이요, 목소리의 모양은 나직함이요, 머리의 모양은 바로세움이요, 숨쉼의 모양은 고요함이요, 서 있음의 모양은 덕스러움이요, 얼굴의 모양은 장엄함이다.
所謂九容者(소위구용자), 足容重(족용중), 手容恭(수용공), 目容端(목용단), 口容止(구용지), 聲容靜(성용정), 頭容直(두용직), 氣容肅(기용숙), 立容德(입용덕), 色容莊(색용장).
발과 손에서 시작하여, 눈과 입으로 갔다가, 목소리, 머리, 숨쉼, 서 있음에 이르고 얼굴로 마무리하고 있다. 몸의 자세와 동작을 모두 말하고, 또 말할 때의 목소리 크기까지 말했다. 이를 준언어(paralanguage)라 한다. 손이 아니라 발부터 먼저 말한 것이 주목된다. 얼굴, 곧 얼굴의 빛/표정을 맨마지막에 말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 발의 무거움: "발을 가볍게 들지 않는다. 어른 앞에서 나갈 할 때에는 종종걸음으로 가야 하니, 곧 이 조목에 구애받지 않는다." [不輕擧也(불경거야), 若趨于尊長之前(약추우존장지전), 則不可拘此(즉불가구차).]
[2] 손의 공손함: "손을 함부로 늘어뜨리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는다." [手無慢弛(수무만이), 無事則當端拱(무사칙당단공), 不妄動(불망동).]
수족(手足) 곧 손과 발을 말하는 대신에, 족수(足手) 곧 발과 손을 말했다. 나무나 풀처럼, 아니 새나 물고기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땅을 기반으로 딛고 있으니 맨먼저 말했을 것이다. 발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했다. 빠른 걸음도 달림도 하지 말라 했다. 양발 모두 땅에서 떼지 말라는 것이다. 일을 할 때 외에는 손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했다. 공수(恭手)하라는 것이다. 이 둘을 함께 말하면, 경거망동(輕擧妄動)하면 못쓴다는 뜻일이다.
[3] 눈의 단아함: "그 눈동자를 안정시켜, 그냥 보거나 쳐다봄을 마땅히 바르게 하고, 흘려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定其眼睫(정기안첩), 視瞻當正(시첨당정), 不可流眄邪睇(불가류면사제).]
[4] 입의 다물음: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늘 움직이지 않는다." [非言語飮食之時(비언어음식지시), 則口常不動(즉구상부동).]
눈을 마음의 창(窓)이라 했다. 눈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눈동자를 안정시켜야 하고, 시선을 바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흘려보거나 훔쳐볼 수 없다. "Peeping Tom"이란 말이 있다. "훔쳐보는 톰"이다. 훔쳐보다 눈이 멀었다고 한다. 훔쳐보기를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말할 때나 먹거나 마실 때에는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입의 기능이란 것이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다. 그 밖에는 입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했다. 말은 되도록 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남의 얼굴을 볼 때 입을 먼저 본다고 한다. 우리와 반대다. 우리는 눈을 통해 표정을 읽고, 서양인들은 입을 보고 표정을 읽는다고 한다. 여기에도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목소리의 나직함: "형기를 마땅히 가지런히 가다듬고, 구역질이나 트림 같은 잡된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當整攝形氣(당정섭형기), 不可出噦咳等雜聲(불가출홰해등잡성).]
[7] 숨쉼의 고요함: "숨쉬기는 마땅히 코로 고르게 하여, 목소리의 기운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當調和鼻息(당조화비식), 不可使有聲氣(불가사유성기).]
목소리와 숨쉬기를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여, 앞뒤 순서를 바꾼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말을 할 때다. 말을 할 때에는 그 목소리를 가지런히 가다듬어 나직히 해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이 편하다. 목소리가 너무 크면 듣고 있기에 괴롭고, 너무 작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모두 불편하다. 강세나 억양이 있는 것은 좋지만 소용없이 오르락내리락 해서는 못쓴다. 숨을 고르게 쉬어야 목소리도 고르게 된다. 숨쉬기는 입으로 하기보다 코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으로 숨쉬면 자연스럽게 흉식호흡이 되고, 숨을 코로 쉬면 그대로 복식호흡이나 단전호흡이 된다. 들숨과 날숨을 모두 코로 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숨을 코로 쉬면 입은 자연히 다물게 된다.
[6] 머리의 바로세움: "머리를 바르게 세우면 마땅히 몸도 곧게 되니, 머리를 기울이거나, 돌리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 [當正頭直身(당정두직신), 不可傾回偏倚(불가경회편의).]
[8] 서 있음의 덕스러움: "한가운데 똑바르게 서고 의지하지 않으면, 의젓해져 덕스러운 기상이 있게 된다." [中立不倚(중립불의), 儼然有德之氣像(엄연유덕지기상.)]
머리를 바르게 바르게 세우면 몸도 곧게 된다 했다. 그렇게 하면 앉든 서든, 몸이 곧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를 아래나 위로 기울이거나, 빙빙 돌리거나, 왼편이나 오른편으로 치우치거나, 무엇에 의지하는 것은 머리 둠의 망동(妄動)이다. 남과 말을 주고받을 때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가로젖기 같은 머리 움직임이 간혹 필요하다. 일어설 때나 일어나 서 있을 때 머리를 바로 세우면, 자연히 가운데 서게 된다. 머리를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어떤 것에 기대지 않기만 하면, 나름대로 의젓한 기상, 곧 활력과 후덕함이 따라오는 것이다. "원더우먼 자세"처럼 말이다.
[9] 얼굴의 장엄함: "얼굴빛을 가지런하고 단정히 하여, 나태하고 교만한 기색이 없도록 한다." [顔色整齊(안색정제), 無怠慢之氣(무태만지기).]
마지막이 얼굴이다. 얼굴에서 눈을 보든, 입을 보든, 코를 보든, 안색 곧 얼굴빛/낯빛이 가장 중요하다. 얼굴빛은 표정(表情)이니,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여덟 가지에 조금 부족하지 않은 것이 있더라도, 표정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첫 인상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얼굴 표정이다. 그래서 얼굴을 맨마지막에 말했을 것이다.
이렇게 구용을 모두 말하고 앞의 구사를 합쳐 그 중함을 이렇게 말했다.
"늘 구용과 구사로써 마음속에 붙잡아 두고, 그 몸을 단속하고, 잠깐이라도 놓거나 버리지 않아야 하며, 또 앉는 곳 모퉁이마다 써 붙여놓고, 때마다 눈을 붙여 보아야 한다." [常以九容九思存於心(상이구용구사존어심), 而檢其身(이검기신), 不可頃刻放捨(불가경각방사), 且書諸座隅(차서제좌우), 時時寓目(시시우목).]
마지막 당부의 말씀이다. 잊어 버릴까봐, 잃어 버릴까봐,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늘 마음에 담아두고 몸을 단속하라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이 글을 여러 장 써서 자주 가는 곳마다 붙여두고 그때마다 눈으로 보고 읽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구사로 표현한 사람 모습을 상상만 해보아도 꼿꼿한 옛 선비의 풍모가 그려진다. 신사(gentle man)다. 너무도 멋진 모습이 아닌가.이런 풍모와 함께 늘 아홉 가지 생각을 하고 산다면, 어떤 잘못으로 사회적 추락이나 낙상할 일이 없을 것이다. 멋들어진 삶이다. 이런 모습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2023년 11월 4일(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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