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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21] 말과 글: 동서(東書)의 차이

by I'mFreeman 2023. 11. 5.

동양[선(禪)]과 서양[행동치료(behavior therapy)]의 만남[-]

 

부제: 한국인이 영어를 말로 잘하지 못하는 까닭

 
텔레비전을 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외국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다. 그 사람이 미국에서 온 사람이든, 영국에서 온 사람이든, 독일에서 온 사람이든, 그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너무 잘하는 것이다. 정말 잘한다. 사투리까지도 말로 잘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한국인보다 더 잘한다. 나보다 우리말을 더 잘하는 서양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면, 잘하기는 해도 서양인들만큼 잘하지 못한다. 뭔가 서툴고, 어색하다. 서양인들만큼 유창하지도 않다. 왜 이런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방송이란 특성상 '대본'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으로는 설명이 잘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잘하는 것으로 '공인된' 사람들일 것이다. 말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땅에 오기 전에 미리 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땅에 와서 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산 세월도 서로 다를 것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말을 잘하지만, 동양인에 비해 서양인들이 우리'말'을 더 잘한다. 왜 그런 것일까. 보통의 사람들도 그런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은 이렇다. '말'에 대한 문화적 전통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는 대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말'로 먹고살았고, '말'로 사람들을 제압하여 설득하는 사람들이다. 로마에서도 '웅변'(雄辯)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웅변은 '연설'이다. 연설로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것이다. 중세 유럽의 삼학, 곧 문법, 변증법/논리학, 수사학은 실상 '말'을 잘하기 위해 배웠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중일 삼국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국 고대문헌 ≪논어≫에 나오는 "교언영색( 巧言令色), 선의인(鮮矣仁)."이란 공자의 말씀이 동양삼국에 미친 영향이 컸을 것이다. 말재주가 좋은 사람, 얼굴을 꾸민 사람 중에 어진[仁] 사람이 거의 없다 하였으니, 이런 사람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도 앞의 물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다. 미국에 가서 살고 있는데 출연섭외를 받았다고 해보다. 아마도 대분의 한국인들은 거절할 것이다. 방송에서 영어로 '말'을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나도 마찬가지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갈 일도,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상황을 먼저 말한다. 중학교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영어는 퍽 잘한 편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영어 교사"가 되기도 했다. 학과 친구들보다 한 학기 앞서 1학년 2학기 때 영어교육과 전공 과목을 하나 이수했다. 그 뒤에 영문학에 영어학, 그리고 영어교육학까지 배웠다. 영어교육과에서만 14개 과목, 42학점을 땄다. 내 교원자격증에 표시된 과목은 "외국어(영어)"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42학점을 따야 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모두 영어책으로 했지만, 한국인 교수에게 우리말로 배웠다. 당시는 원어민이 없었다. TOEFL 책이 부교재인 수업도 여럿 있었다. 그때는 TOEIC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것은 대학원 첫 학기에 1개월 배운 것이 전부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공 공부를 할 때, 거의 대부분의 수업을 영어'원서'로 했다. 매일 그 책을 읽고 우리글로 옮겨야 했다. 무려 5년을 그렇게 했다. 학위논문을 쓸 때에도 영어로 쓰인 논문과 책을 읽어야 했다. 우리글로 옮겨 인용해야 했다. 교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40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영어로 쓰인 글이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영어로 쓰인 글을 읽어 해결한다.
 
    십여 년 전에, 장애청년과 비장애청년으로 구성된 팀의 지도교수 신분으로 영국을 간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매년 하던 것이다. 장애청년들을 해외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비용은 신한은행에서 댄다. 팀에서 정한 과제를 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때로 관광도 한다. 그때 우리 팀은 BBC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장애인을 면담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KBS에서 벤치마킹 하려 해서 KBS PD도 동행했다. 그 밖에 특수학교와 장애인단체도 여럿 찾아갔다. 학교 소개도 받았고, 관련 인사들과 대담도 했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서 설문조사도 했다.
 
   이틀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보냈다. 프린지(Fringe) 축제기간이어서 이것저것 공연 관람도 했다. 그곳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설문조사했다. 장로교 교회에 찾아갔다. 예배가 끝난 뒤, 내가 방문목적과 팀원 소개 등으로 '연설'(speech)했다. 그 전 날 전자사전의 도움을 받아 '연설문'을 적어둔 것을 읽었다. 런던에 돌아와 런던아이(London Eye)도 타보고, 오페라 라이언 킹(Lion King)도 관람했다.
 
    이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되었다. 영어를 말로 듣는 것부터 서투렀던 나는 필요한 말만 했다. 어려움이 많았다. 손짓발짓하며 말하는 것은 그나마 나았다. 우리 팀의 학생 하나가 더 잘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영어공부했고, 교원자격도 있는데, 왜 이 모양일까 생각했다. 내가 앞에서 영어를 퍽 잘했다는 것은 실상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좀 잘한 것은 '글'이었다. 글읽기를 글쓰기보다 더 잘했다. 영어로 쓰여진 글을 그럭저럭 읽고 쓸 수 있는데, 왜 듣기도 말하기도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만 이렇지 않음을 당장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취학하기도 전부터, 네다섯 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할애한다. 거의 모두 과외교습을 받거나 학원을 다닌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수많은 시간을 영어공부하는데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영어를 말로 잘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조동일 교수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이 땅에서 학문하기≫(2000, 지식산업사)에서다. 그런데 그도 스스로 말하기를, 논문을 영어로 쓸 수 있지만, 영어를 듣고 말하는데는 서투르다 했다. 일본에서는 국가가 나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고, 원어민을 데려오기도 하는 등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를 외국어 학습을 예로 들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양인'은 영어를 '말로' 배우고, '동아시아인'은 '글로' 배우기 때문이란다. 그런 전통이 있다 하고, 중세기에 형성된 것이라 했다. 중세 유럽 공동의 문어(文語=글)는 "라틴어"(Latin)고, 동아시아 공동의 문어는 "한문"(漢文)이라 했다. '라틴어'는 글이기에 앞서 '말'이었고, '한문'은 말이 아니라 '글'이었다고 했다. 라틴어는 말로 배우고, 한문은 글로 배우는 전통이 생긴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서양인은 한글을 말로 배워, 듣고 말하기는 잘해도, 읽고 쓰는 능력은 모자라는 반면, 한국인은 영어를 글로 배워, 읽고 쓰기를 듣고 말하기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라틴어로 "Veni, vidi, vici"라고 외친 것은 말 그대로 말이다. 승전보에 글로 써여진 것은 그 뒤다. 우리말로, 승리의 기쁨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말'로 외친 것이다. 한문은 이와 다르다. 예를 들건대, "有朋自遠放來不亦樂乎"를 "유붕자원방해불역락호"라고 말하지 않는다. 읽을 때에는, 할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放來)[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라).]라 한다. 표점하여 문장을 끊고, 토를 달아 읽는 것이다. 말할 때에는, 보통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한다. '글 따로, 말 따로'인 셈이다. 서양인들이 라틴어를 말로 먼저 읽고 글로도 읽는다면, 우리는 한문을 글로 읽을 뿐이다.
 
    어찌하여 이런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일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습관이 되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습적으로 그리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일까.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것일까. 오늘날까지 생물로 살아 있는 이 현상을 밈(meme), 곧 '문화유전자'란 용어를 빌어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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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meme)이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 1976)에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가 처음 사용한 학술용어다. 모방(imitation)의 뜻인 그리스어 mimesis와 유전자의 뜻인gene을 합성한 말이다. 밈을 ‘인간의 유전자처럼 자기복제적 특징을 지니며 번식해 대를 이어서 전해져 오는 사상이나 종교 또는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라고 정의했다.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져 재생산되는 문화 현상 일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2023년 11월 4일(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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