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2]: 언어의 보완과 대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과 글로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제 의사를 말이나 글로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그렇고,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다. 장애인들이 그렇고, 노인들이 그렇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배우면 될 것이다. 외국인도 이 땅에서 생활하면서 배워가면 될 것이다. 이 땅을 떠나 제 나라로 돌아가면 소통의 문제가 사라진다. 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과 노화와 함께 청력과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이와 다른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청력과 시력의 상실도 그렇다.
이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거나 남들과 소통할 때, 보통의 언어, 곧 말과 글로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 할 수 없음이란 곤란함일 수도 있고 불가함일 수도 있다. 곤란함이나 불가함이 말일 수도 있고 글일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소통은 말이 주가 되고 글로 하는 소통은 가끔이다. 각각 비언어가 동행한다. 학교생활의 일상도 대개 그렇다. 그런가 하면, 글과 말은 학교에서 배울 것, 배워야 하는 과목이 된다. 말듣기도 배우고, 말하기도 배우고, 글읽기도 배우고 글쓰기도 배운다. 이것을 배울 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말과 글로 가르치고 배운다. 학교생활의 말과 글은 일상생활의 그것과 다른 것이다.
일생생활과 학교생활에서 소통함과 배움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이다. 그 어려움이 온전히 불가능함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남들과 소통하고,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와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하고, 무엇으로 배울 때 어려움을 넘어 불가함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예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교육'하고 '교정'하는 것이다. 교육과 교정으로도 막을 수 없을 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보상'이라 한다. 노인들의 시력손실을 돋보기 사용으로, 청력손실을 보청기로 대신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이 셋이 남들이 개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1. 장애인,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말을 듣는다는 것은 남의 말을 귀로 듣는 것과 그 말의 뜻을 안다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귀와 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가능한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의사를 입으로 소리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뇌의 기능이 있어야 하고, 호흡이나 발성부터 조음까지 여러 기관이 제기능을 다해야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글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글에 담겨 있는 뜻을 아는 것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눈의 기능, 입의 기능, 뇌의 기능이 모두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있어야 하고 손의 기능이 필요하다. 실로, 이 넷은 귀와 눈와 입, 성대부터 입술, 대뇌까지 그 기능을 모두 갖출 때 가능한 것이다.
이들 기능에서 하나라도 제기능을 못하면, 어느 한 가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뇌의 기능이 제기능을 발휘하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과 글에 의한 소통의 곤란함이나 불가함이 있는 것은 이들 기능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을 봄과 소리를 들음에 제약이 있는 사람도 있고, 호흡과 발성부터 발음과 조음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있고, 대뇌의 손상으로 지각의 오류와 생각의 곤란이 있는 사람도 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뇌성마비인, 지적장애인, 언어장애인, 학습장애인 같은 이들이다. 이들이 소통의 약자(弱者)를 대표하는 셈이다.
시각장애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시력이 약한 사람도 있고, 시야가 좁은 사람도 있다. 시력이 모두 소실되어 잔존 시력이 전혀 남지 않은 상태가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시력이 남아 있는 상태도 있다. 앞의 것을 맹(盲 blindness), 뒤의 것을 저시력(low vision)이라 한다. 저시력인이나 맹인은 말듣기와 말하기는 잘할 수 있다. 잔존시력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글읽기와 글쓰기는 제약이 있다. 저시력인은 어렵더라도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있다. 시력의 '보존'을 말한 것은 옛 일이 되었고, 요즈음은 시력의 '활용'을 중시한다. 맹인은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볼 수 없으니, 보행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청각장애라고 해서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청력손실의 정도도 다르고, 평형기능의 문제 여부도 다르다. 남은 청력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을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앞의 것은 농(聾 deafness), 뒤의 것은 난청(難聽 hard of hearing)이다. 듣지 못하는 탓에 말까지 하지 못할 수 있다. 아(啞 dumb)라 한다. 난청인이나 농인은 글읽기와 글쓰기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들의 말듣기와 말하기는 청력손실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 난청인은 그 잔존청력에 따라 다르지만, 말듣기와 말하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할 수 있다. 농인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러니 말듣기와 말하기는 하지 못한다.
지체장애는 서로 간에 다르다. 사지 곧 팔다리와 체간 곧 몸통의 장애니, 지적능력이 온전하다면 말과 글 모두 문제가 없다. 뇌성마비 역시 지적능력에 문제가 없다면, 말도 하고 글도 쓸 수 있지만, 우리가 알아듣고 알아보기가 어려울 뿐이다. 지체장애는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보행의 어려움이 있다. 지적장애는 지능의 문제이니, 어휘력도 표현력에도 제약이 있다. 그러니 제 뜻을 제대로 실어펴지 못한다.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언어장애는 그야말로 말과 글의 장애다. 그 속사정은 사뭇 다르다.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발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성증(失聲症 aphonia)과 난성증(難聲症 disphonia)과 같은 것이다. 음성이 보통에 비해 크게 다를 수도 있다. 음성의 장애라 한다. 조음의 어려움도 있고, 말하는 속도의 과부족도 있다. 앞의 것을 조음장애, 뒤의 것을 유창성장애라 한다. 이 셋은 구어로 표현하기, 곧 말하기의 장애다. 그런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또는 살아가는 도중에 말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실어증(失語症 aphasia)이라 한다.
뇌의 손상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실상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글을 읽고 또는 쓰는 것을 할 수 없는 장애도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도 있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난독증(難讀症 dislexia)과 난서증(難書症 disgraphia)이다. 이런 의학적 용어를 대신하여 읽기장애와 쓰기장애라고 한다. 수학장애를 더해 학습장애라고 한다.
2. 의사소통의 다른 방식: 언어의 보완과 대체
이제까지 장애(장애인이 아니다)와 언어에 의한 소통의 곤란 또는 불가를 말했다. 각각의 장애에 소통의 문제를 말한 것은 장애 각각의 사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는 그 필요의 '독특함'(uniqueness)을 말했지만, 요즈음에는 '개별적임'(individuality)을 말한다. 독특함, 특별함, 유별남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실상은 모든 사람이 독특하고, 특별히 다르고, 별나다. 그래서 이제는 개별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자 필요한 것이 다름을 말하며, "장애" 또는 "○○장애"라는 명칭(label)을 붙이는 것은 그 '필요'(needs)에 따라 '지원'(support)하기 위함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그 필요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이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장애인의 소통을 먼저 생각해본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말만 하지 않고 몸짓을 함께 한다. 이 말을 달리 하면, 비언어 소통의 수단으로 말을 '보완'하는 것이다. 말을 잘하지 못하면, 글로 '보완'하기도 한다. 말과 글을 모두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장기로 보완하는 것이다. 몸만으로 말한다면, 말과 글 곧 언어를 몸말로 '대체'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장애인의 소통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보상'(compensation)의 방식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저시력인은 돋보기나 확대경 같은 것으로 본다. 활자 크기가 큰 확대문자를 사용할 수도 있다. 책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맹인은 보통인이 쓰는 글자[묵자(墨字)]를 대신하여 점자(點字 braille)로 글을 읽고 쓴다. 점자타자기 같은 것을 쓸 수도 있다. 글을 녹음한 책[錄書]으로 읽을 수도 있다. 녹서는 난독증 곧 읽기 장애인에게도 필요하다. 컴퓨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정보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홈페이지에 그런 기능이 있다. 한글 프로그램에도 점자 출력 기능이 있다.
고막의 문제, 곧 음의 증폭에 문제로 듣지 못하는 농인은 보청기(hearing aids)를 사용한다. 달팽이관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듣지 못하는 농인은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받는다. 수어(手語)도 사용한다. 지어(指語)도 있다. 수화(手話 sign language), 곧 손으로 하는 말이다. 몸말의 일종이다. 글로 소통할 때에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문자를 가리키거나 그림을 가리켜 의사를 표현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언어합성기를 통해 말할 수도 있다. 스티브 호킹 박사는 평생 이렇게 소통했다. 톰 크루즈는 난독증, 곧 글 읽기의 문제를 타인이 대본을 읽어주거나 그것을 녹음한 것으로 이겨낸다고 들있다. 지체장애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해 이들이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자동차도 있다. 자동변속기도 하지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자동변속기가 있어 모든 사람의 운전이 쉬워졌다.
실례를 모두 든다면, 이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편에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 있고, 다른 편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있다. 장애인을 위한 각종 물품과 서비스를 '보조공학'(assistant technology)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등을 설계하는 것을 '보편 설계'(universal design)이라 한다. 유럽에서는 '모든 이를 위한[범용] 설계'(design for all)라고 한다. 의사소통에서는 '보완 소통'과 '대체 소통'이 있다. 이 둘을 합쳐 '보완과 대체 소통'(AAC: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이라 한다. 보조공학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소통에서 '보완'이란 말에 무언가를 보태는 것이다. '대체'란 말을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보완과 대체 소통이란 사람이 말 대신에 사용하는 모든 방식을 말한다. 그 유형은 다종다양하다. 몸짓과 얼굴표정, 글로 쓰기, 그림으로 그리기, 글자를 가리켜 말하기, 사진·그림·글을 가리키기 등의 'no-tech' 유형도 있고, 말생성기기(speech-generating device)와 같이 컴퓨터로 합성한 목소리를 사용하거나 아이패드나 테블릿의 앱을 사용하여 소통하는 것과 같은 'high-tech' 유형도 있다. 사람들마다 모두 소통의 방식이 다르기에, 사용하는 보완과 대체 소통의 유형도 각자 다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런 유형의 도구 일체를 보완과 대체 소통 시스템이라고 한다.
'보상'에 초점을 두고, 보통의 말과 글로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대안적 소통 방식은 말했다. 정통의학 외에 '보완의학'이나 '대체의학'이 있듯이, 보완 소통과 대체 소통이 있는 것이다. 장애의 예방과 치료에 '생물학'과 '의학'이 큰 공헌을 했다면, 그 보상에는 '과학기술'과 '공학'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것은 새로운 과학기술, 공학의 발전에 힙입은 바가 크다. 디지털 기술이 큰 공을 세웠다. 또, 사회 소수자와 약자의 어려움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매사 잘 살펴 볼 일이다.
2023년 11월 4일(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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