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습장애란 무엇인가
학습장애(learning disabilities)라는 장애가 있다. 아마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저 공부 못하는 것이란 뜻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걸 것이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애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수교육법에만 있다. 이 말과 비슷한 말이 많은 것도 혼란을 부채질한다. 학습'부진'이나 학'업'부진, 학습'지진' 같은 말이 더 흔히 쓰이고, 이 말들이 뜻하는 바가 또래들보다 학업성적이 낮음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업부진은 underachievement, 학습지진은 slow learning이다.
아무튼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학업성취가 낮은 아이들이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이를 구분하면, 학습장애가 학업부진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라는 것이다. 학업부진, 학업성취가 낮은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의 하나를 학습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학업부진 속에 그 이유의 하나로 학습장애가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말과 다른 몇 가지 말의 차이를 알고 그 뜻을 명료히 파악하기 위해, 이 말의 본고장인 미국, 그 미국의 법에서 말하는 학습장애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님을 미국의 장애인교육법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이 법에 있는 정의를 원문 그대로 본다. 번역하는 대신에 설명라려 한다. (번역한 글은 "더보기"에서 볼 수 있다.)
Specific learning disability. (i) General. Specific learning disability means a disorder in one or more of the basic psychological processes involved in understanding or in using language, spoken or written, that may manifest itself in the imperfect ability to listen, think, speak, read, write, spell, or to do mathematical calculations, including conditions such as perceptual disabilities, brain injury, minimal brain dysfunction, dyslexia, and developmental aphasia. (ii) Disorders not included. Specific learning disability does not include learning problems that are primarily the result of visual, hearing, or motor disabilities, of intellectual disability, of emotional disturbance, or of environmental, cultural, or economic disadvantage.
위의 정의는 일단 말들이 너무 많다. 설명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특정'(specific)이란 말이 써였다. 학습의 영역 '일반'(general)이 아니라, 몇 가지라는 뜻이다. 그것은 뒤에 나오니 그때 살펴본다. '장애'를 나타내는 말이 여럿 쓰이고 있다. disability, disorder, dysfunction, disturbance, 이 말들을 구분한다. disability[불능(不能)]란 장애 일반을 나타내는 말로 어떤 능력이 부족함을, disorder[부조(不調)]란 마음과 몸이 고르지 않음을, dysfuntion[(기능)부전(不全)]이란 몸과 마음의 기능이 불완전함을, disturbance[교란(攪亂)]란 주로 마음의 혼란을 나타낸다. 이런 차이점을 염두에 알아본다.
일단 정의하기를 '기초적 심리과정의 장애[부조]'라고 했다. 그 과정에 하나 이상 그리고 그 과정은 구어와 문어 가릴 것 없이 언어를 이해하거나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 했다. 언어의 이해나 사용에서 기초가 되는 심리과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듣거나 또는 글을 쓰거나 읽을 때, 그것을 심리적으로 처리하게 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주의집중, 지각, 변별, 기억 등이 개입되는 것이다. 일례만 들어본다. "사과" 실물이나 글을 보고 "사과"라고 말하려면, 그 빛깔, 맛, 생긴 모양 같은 것을 '기억'해내야 한다. 사과를 다른 과일과 '변별'해야 한다. 사과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사과라는 글짜를 있는 그대로 '지각'해야 한다. 이러한 심리과정이 있어야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과정이 여럿인데 하나에만 장애[부조]가 있어도 학습에 장애[불능]가 초래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일곱 영역 중 어느 것에 온전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듣기, 생각하기, 말하기, 읽기, 쓰기, 철자법 또는 수학계산 능력의 불완전함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앞의 "특정"이란 이 일곱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특정학습장애란 말[개념]의 뜻을 밝히는 내포다. 다시 말하면, 일곱 영역에서 온전한 능력을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기초적 심리과정에 장애가 있는 것을 "학습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뜻을 밝혔지만, 뚜렷하게 선명하게 의미가 포착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학습장애"에 포함될 수 있는 몇 가지 상태/조건을 나열한다. 지각장애[불능], 뇌손상, 미세/최소뇌기능장애(MBD), 난독증, 발달성 실어증이다. MBD는 뇌에 손상이 있는 사람과 비슷해 보이지만, 뇌의 구조이상이 없기에, 뇌의 기능에 메세한 이상이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한 말이다. 뇌손상은 뇌에 실제로 입은 손상이고, 난독증은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이며, 발달성 실어증은 선천적으로 말하기를 잃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각장애[불능]는 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에컨대, 한글 모음 "ㅏ"를 "ㅓ"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으로 볼 때에는 "ㅏ"이지만, 뇌가 "ㅓ"로 잘못 해석한 결과다. 이런 현상을 일본인들은 "경영문자"(鏡影文字)라는 말로 설명한다. '거울에 비친' 글처럼 읽는다는 것이다. 좌우의 구분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뇌손상자, 학습장애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지각의 잘못, 오지각이다. 집중할 것에 집중하지 않고 무시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다섯을 특정하여 포함시킨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장애의 유형에 "특정학습장애"는 없었다. 이런 다섯이 진단명으로 있었을 뿐이다. 이런 아이들은 제 특성에 알맞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63년 그 부모들이 시카고에 모였다. 그때 커크(Samuel A. Kirk)라는 교수가 '학습장애'라는 말을 제안했다. 이 말만큼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부모들이 이 의견을 받아들였고, 자기들 단체 이름으로 삼았고, 연방법에도 채택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특정학습장애"에 포함되지 않는 것, 제외되는 것을 나열하고 있다. 학습의 문제, 곧 학습곤란의 원인이 앞의 포함 조건 다섯에 들지 않는 것은 제외함을 명시한 것이다. 넷으로 나누어 명시한 것이다. 시각·청각·운동의 장애[불능], 지능의 장애[블능], 정서의 장애[교란], 환경·문화·경제적 실조다. 이런 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 학습문제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은 "특정학습장애"가 아니라고 정한 것이다. 앞의 장애 셋은 각각 그것대로의 장애가 있어 그렇게 분류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장애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법에서는 7가지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읽기(학습)장애, 쓰기(학습)장애, 수학(학습)장애, 셋이 있다. 학습장애가 무엇인지 쉽게 말한다면, 지능검사로 측정되는 잠재능력에 비해, 실제 이 셋의 학업성취가 크게 못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곧 잠재능력과 학업성취 간의 극심한 격차가 이 셋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 내지 능력 간 불일치(discrepancy)를 학습장애로 판단하는 방법은 여럿있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수학공식까지 있어 모두 설명할 수 없다. 학습장애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글은 이것으로 마친다.
특정학습장애. (i) 총칙. 특정학습장애[불능]은 구어든 문어든 언어의 이해 또는 사용에 관여된 하나 이상의 기본적 심리과정의 장애[부조]을 의미하고, 듣기, 생각하기, 말하기, 읽기, 쓰기, 철자 또는 산수계산 능력의 불완전성으로 나타나며, 지각장애[불능], 뇌상해, 최소뇌기능장애[부전], 난독증, 발달성 실어증을 포함한다. (ii) 포함되지 않는 장애[부조]. 시각, 청각 또는 운동장애[불능], 지적장애[불능], 정서장애[교란], 또는 환경적, 문화적 또는 경제적 불이익이 주된 원인인 학습문제는 특정학습장애에 포함되지 않는다.
2. 그 수의 한미 간 격차가 큰 까닭은 무엇인가
하여간 학습장애는 읽기장애, 쓰기장애, 수학장애로 분류된다. 수학장애를 제외한 둘은 문어다. 구어는 제외된다. 글읽기와 글쓰기를 말할 뿐, 말듣기와 말하기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읽기장애(진단명으로는 난독증[dislexia]) 따로, 쓰기장애(진단명으로는 난서증[disgraphia]) 따로 일 수도 있지만, 읽기장애가 있으면 쓰기장애까지 겸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읽기와 쓰기란 글자 읽기부터, 단어와 문장 읽기, 독해까지 포함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글자 읽기와 글자 쓰기다. 이것이 주목된다.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특수교육을 받는 장애아동들 중에서 얼마 정도가 학습장애일까. 2019년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아동들 중에서 학습장애가 미국은 약 38퍼센트, 한국은 약 1.5퍼센트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물론 미국 연방법 장애인교육법의 정의와 한국 특수교육법의 정의가 꽤 다르다. 그렇지만 정의의 차이가 이런 큰 차이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과거 미국에서는 50퍼센트 내외였다. 대략 49-51퍼센트였다. 2006년 이전에는 ADHA/ADD란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특수교육을 받는 대상은 아니었다. 다른 법을 통해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있었다. 이렇게 일부 주에서 이 아이들을 특수교육대상자로 포함하고 차츰 그런 주가 늘어났다. 연방법에서도 이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주의력결핍장애를 포함하여 "그 밖의 건강장애"에 소속시켰다. 그런 탓에, "그 밖의 건강장애"로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 수가 급증했고 전체 특수교육대상자에서 상당한 비율이 되었다. 이렇게 되니, 전체 특수교육대상자 중에서 학습장애의 비율이 차츰 줄어든 것이다.
1.5퍼센트 대 38퍼센트!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긴 이 현상은 앞에서 말한 한국과 미국 간 정의의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학습장애 내의 두 유형이 모두 문어, 곧 글의 이해와 사용임을 보고, 조동일 교수가 말한 말과 글에 대한 동서 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면서, 이 둘 사이에 모종의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 교수의 해석은 앞에서 모두 말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중세 유럽의 공동 문어인 라틴어는 글이기에 앞서 말이었고,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인 한문은 말이 아니라 글이었다. 서양인들은 라틴어를 말로 먼저 배웠고, 동아시아인들은 한문을 글로 먼저 배웠다. 그런 관습이 아직 남아 서양인들은 외국어를 배울 때 글보다 말로 배우고, 동아시아인들은 말보다 글로 외국어를 배운다. 서양인은 외국어를 말로는 잘하지만 글로는 잘하지 못하고, 한국인은 글로는 어느 정도 잘하지만 말로는 잘하지 못한다.
말과 글에 대한 이런 동서간의 차이가 학습장애의 수와 비율에 대한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에 머물러 있다. 이 현상을 실제로 깊이 연구해야 한다. 그 차이에 대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이론이 나와야 한다. 특수교육을 학문으로 하는 사람들 공통의 과제 하나가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23년 11월 7일(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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