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42] 한국 사회의 단면, 공격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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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42] 한국 사회의 단면, 공격과 폭력

by I'mFreeman 2024. 11. 7.

내가 봉사하는 헌책방과 그 옆 국민은행(옛, 대보극장 자리) 사이에 구두 수선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컨테이너 하나다. 그곳에서 주인과 그 친구 한 분이 함께 일하고 있다. 오늘날에야 헐고 헤진 구두를 누가 고쳐서 신겠는가. 예나지금이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철지난 구두도 죄다 버린다. 충분히 신을 수 있는 구두도 많다 싶으면, 대개 버리고 만다. 신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옷가지며, 가방이며, 책이며, 심지어 먹을거리도 쉽게 버린다. 물건이 너무 흔한 까닭이다. 소비가 만능인 시대다. 소비가 있어야 생산되고, 그래야만 내수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내게도 구두가 여럿 있다. 아내가 나를 위해 사준 것이다. 편안히 신을 수 있도록 사준 것이지만, 조금 헐렁한 것도 있다. 고쳐 신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포천에는 구두 수선 가게가 없다. 차를 타고 가다 의정부에서 한 곳 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저곳에서 고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곳을 지날 때는 매번 구두를 가져오지 못했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잊은 것이다. 다음에는 하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지금부터 보름 전쯤에, 이곳 대구에 내려올 때 가져온 혁대 둘 중에 하나가 끊어졌다. 그날 출근하는 길에 그 혁대의 수선을 맡겼다. 하나 더 있으니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고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에 고쳤다며 가져오셨다. 친구 분이었다. 수리비를 물으니 3,000원이라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수리비를 드렸다. 그런데 그날 따라 그 주인이 내게 따로 세 번 찾아왔다. 귤을 두 개 주셨다. 아내가 간식으로 준 빵 하나가 뒤따랐고, 대추 5알을 또 갖다 주었다. 이웃 간에 수리비를 받은 것이 내심 불편하셨던가 싶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날, 내게 오셔서 사주를 봐주고 여러 가지를 물었다. 봉급은 얼마나 받는가 물었다. 봉사라고 하니 놀라며 자기 가게에서 일하면 200만원은 주겠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것이다. 말끝에 친구가 수선하고 수리비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수선을 말한 적 있는 구두를 가져오면 무료로 고쳐 주겠다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니, 반값만 받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 분과 매일 인사하고, 지나가는 말을 나누며, 느낀점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라고 할까, 뭔가 장인 정신이 있어 보였다. 참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그 분에게서.
 

출처: 구글 북스

 
    그저께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책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저 흘려들었다. 책방 사장의 친구 한 사람이 들어와서 조폭 같이 생긴 손님 때문에 구두수선점 주인이 곤혹을 치르는 중이라고 했다. 벤츠를 타고 온 그 손님, 전에는 1500cc 오토바이를 타고 온 그 손님이 수선점 주인에게 맡긴 운동화 때문이라고 했다. 수선점 주인은 운동화의 떨어진 부분을 본드로 붙이는 과정에서 들쳐보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뭔가 오해를 한 운동화 주인이 계속 같은 말을 하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면 그 처분대로 하겠다는 수선점 주인의 말에 격분했다. 쌍욕하고 하이힐로 때리는 시늉을 거듭했다. 운동화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수선점 주인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며, 경찰이 보는 앞에서도 폭행 시도를 했다. 경찰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마침내 수습되었고, 경찰도, 운동화 주인도 돌아갔다.
 
    요즘과 같은 세태에도 그 구두수선점을 찾는 손님들이 꽤 많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오는 분도 매일 여러 분 있다. 그의 실력과 장인 정신을 믿기 때문이리라. 운동화 주인과 같은 손님, 이른바 진상손님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갑질과 폭력 사건 관련 기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땅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그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진면목인 것일까. 천사 같은 얼굴에 악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은 것일까. 지킬 박사 속의 하이드 같은 존재가 인간 본연의 실존일까. 토마스 홉스의 말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법과 제도 이전 '자연인'으로서 우리의 삶일까. 그렇다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밖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착한 마음으로 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렇지 않다면, 이 땅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더 나아가 '발전적'으로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몇되지도 않을 악마 같은 인간 존재로부터 우리들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지켜내려면,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24년 10월 7일(목)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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