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43] 이 땅에서 대학 교수 노릇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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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疾書): 거칠게 쓴 글

[43] 이 땅에서 대학 교수 노릇하기

by I'mFreeman 2024. 11. 8.

대진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듬 해에 맡은 교내행정연구를 하나 한 적이 있다. 관계 문헌을 찾아보니, 고등교육 분야의 연구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용 검토는 고사하고,  제목만 보고 덮어놓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 중에 <세계의 대학교수>(1995, 문이당)란 책이 있었다. 세계 각 곳의 대학 교수에 대해 국제비교 연구를 한 결과로 출판한 책이었다. 그 뒤에  <한국의 대학교수>(1992, 학지사)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둘 모두 연세대학교 이성호 교수의 저작이다. 솔직히 말하면 깊이 읽지는 못했다. 앞의 책은 아직도 서가에 꽂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이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지금의 교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말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읽는 보통 사람들이 대학 교수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을 깨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제도권 내의 공교육 체제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을 '교원'이라 한다. 유아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이 교사, 교감(원감), 교장(원장)을 교원으로 정하고 있는데 비해, 고등교육법은 교수, 학장, 총장을 교원으로 정하고 있다. 교감(원감), 교장(원장), 학장(한두 과목 담당), 총장은 단위 학교의 교육행정 책임자다. 그 밖에 교육부와 그 산하의 교육청, 교육지원청 등에서 장학사, 장학관, 연구사, 연구관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육전문직'이라 한다. 그렇기에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은 교사(강사 포함)와 교수인 것이다.
 
    교수가 교사와 다른 점은 이렇다. 국·공·사립학교를 막론하고, 교사는 소정의 양성 과정을 거쳐 교육부로부터 교부받은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교수는 해당 분야의 자격증 소지 여부와 상관이 없고 '학위' 소지자여야 한다. 학위가 일종의 자격증인 셈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석사학위' 소지자로 대학에서 교수 노릇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학사학위 소지로 교수가 된 분도 봤다). 그래서 '가짜' 학위 문제가 학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박사학위'를 반드시 소지하여야 한다.
 
    교사는 임용되는 때부터 정년을 보장받지만(김대중 정부 때 65세에서 62세로 조정됨), 교수는 임용과 함께 보장되는 정년이란 없다. 계속적인 업적평가에서 '정년보장'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교사든 교수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란 점에서는 같지만, 교수는 교육업적 외에도 연구와 봉사 업적을 평가받는다(교사는 현장연구대회 입상과 학위취득이 승진에서 중요한 요인이 될 뿐이다). 대학 이상의 교육기관은 연구기관의 성격을 지니기에, 특히 연구업적, 그 중에서도 논문실적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저서를 출간해야 그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publish or perish"란 말처럼, 저술이나 논문을 발표하든지,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는 4년제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사범계 학과, 교직과정이 설치된 학과에서 소정의 양성과정을 통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고 졸업할 때 수여받는 '정'교사(2급)과 정교사(2급)의 자격으로 일정 기간의 교직경력을 쌓고 자격연수를 받고 난 뒤에 취득하는 '정'교사(1급)으로 구분된다. 그 밖에 준교사와 2년제, 3년제(사범계열, 보건계열 등) 전문대학(요즘 모두 '대학교'란 이름을 쓰니 교명만으론 구분하기 어렵다)에서 취득하는 실기교사가 있다. 이들 교사도 정교사(2급), 정교사(3급)이 될 수 있다.
 
    대학 교수는 시간제로 강의를 담당하는 '강사'(part-time lecturer)와 전임교수로 나누어진다. 전임교수는 전임강사(full-time lecturer, 지금은 없음), 조(助 assitant)교수, 부(副 associate)교수, 교수(professor, 이른바 '정교수')로 구분된다. 전임교수로 임용되면 2년 뒤에 업적평가를 받고 통과해야 조교수로 승진한다. 조교수는 4년 뒤의 업적평가에서 기준을 충족하면 부교수로 승진한다. 부교수까지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준(대학에 따라 다를 것임)을 충족하면 승진되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려면, 일단 4년간의 업적이 대학의 교수 승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절대평가). 기준을 충족한 이들 중에서 대학이 정한 비율만큼만 승진시킨다(상대평가). 이것이 '정년보장심사'다. 이 절차를 통과해야만 '정년'(65세)이 보장되는 것이다(서양의 대학은 '종신'보장[tenure]임).
교수 승진에 '박사'학위가 필수적이었기에, 과거의 많은 '석사'학위 소지 교수들이 승진을 위해 다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1998년 전임강사로 임용되어 2008년 10월에 정년을 보장받았다. 이건 정말 축하받을 만한 것이다.
 
    각종 언론의 대학평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을 위한 대학평가 등에 따라 기존의 제도가 많이 변했다. 나처럼 호봉제, 기간제 재임용, 요즘 말로 정년트랙으로 교수를 채용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정년 트랙과 함께 비정년 트랙이 생겼고, 기간제 재임용이 계약제 임용으로 바뀌었고, 호봉제를 연봉제가 대신했다. 강사도 고등교육법상 교원의 지위를 가짐과 함께, 전임강사가 없어졌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교수가 생겼다. 이른바 겸임교수, 석좌교수, 특임교수, 대우교수 등과 함께 산학협력단과 평생교육원에도 이런저런 이름의 교수 자리가 생겼다.
 
    이처럼 대학 교수로 임용되는 것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 어렵다. 박사학위 취득까지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 노력과 마음고생까지 고려하면, 비용 효율성이 완전히 바닥을 치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 걸까.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교수들 중에서 논문 표절은 물론이요 위장전입, 본인과 또는 아들의 국방의 의무, 연구비, 부동산 등의 문제에 얽히지 않은 이를 보기 어렵다. 학위 취득과정에서 처했던 을(乙)이 교수가 되고 나면 완전한 갑(甲)이 된다. 시집살이 해본 사람이 시집살이 시킨다는 말과 같다. 조모당의 조모교수가 그 막장을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인턴이나 봉사 같은 것이 있는지도, 그런 것이 자녀의 경력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모르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교수들은 졸지에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 자들이 공정을 외치니, 그야말로 가관(可觀)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수, 곧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 전과 달리 눈에 띨 정도다. 퇴직한 후 요즈음 깊이 체감하고 있다. 학문하기를 택하여 명예를 취하면, 그 밖의 것은 스스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둘 모두 잡으려 하다가 '사회적 낙상'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추락하는 것은 본시 날개가 없는 법이다. 한 시절 대학 교수 노릇을 하고 퇴직하고 더는 교수로 불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망육십의 평범한 보통 사람이 여기에나마 이런 글을 남기는 까닭이다.
 

2024년 11월 8일(금)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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