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8] 일요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주위를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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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h!Story: 사생애(私生涯)

[8] 일요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주위를 돌다

by I'mFreeman 2024. 11. 10.

오늘은 일요일이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깼다. 어제 중요한 글을 쓰느라고 좀 무리했나 보다. 바람이 차가워지자 몸 상태가 조금 나빠진 탓이다. 정작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일단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무대만 마련한 셈이다. 오늘 하루는 어제 글을 쓰기 위해 서점에서 사진 촬영한 곡산 한씨 관련 책 내용을 컴퓨터로 입력하는 일로 시작했다. 그 중간에 아들이 세탁해 널어둔 수건 십 여장을 개어 수납장에 넣었다. 아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출처: 대구서문시장 공식 홈페이지

 
11시경에 집을 나섰다. 일요일에도 헌책방은 바쁘다.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정리한 분들이 대개 주말에 팔러 오신다. 또, 인터넷 주문이 많기도 한 날이다. 주문받은 책을 찾아내고 다음 날 배송하기 위한 작업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 책방에 들어서니 사장은 어제 말한 그대로 결혼식에 가고 자리에 없었다. 커피부터 내렸다. 구워놓은 식빵 한 조각을 커피에 적셔 먹으면서, 이런저런 것을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80여 권의 책을 들고 사장이 돌아왔다. 생텍쥐뻬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각기 다른 판본으로 100여 권 수집한 분이 추가 구입을 위해 어제 왔었다. 그분에게 배달할 <어린 왕자>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빼고 모두 정리하니, 29권이었다. 책배로 보낼 책들을 모두 준비해 두고, 5시경에 퇴근했다.
 
    오늘은 포천으로 가기 전까지 내 생애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여 년을 살았던 대구를 마음 내키는 대로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작심하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대구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곳은 우리 어머니 친가와 아주 가까운 내당동이다. 매일 출근하는 길에 남산초등학교를 본다. 그 옆 골목에 있던 어느 집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사 와서 3학년 때까지 살며, 남산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국내에 막 출시된 샤프펜을 학교 옆 길가에서 주웠던 것이 생각났다. 5학년 2학기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력고사 점수가 발표된 때까지는, 이 서점과 정말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명덕초등학교, 심인중학교, 능인고등학교를 그곳에 살 때 졸업했다. 얼마 전에 그 주위를 돌아봤다. 옛 골목과 친구들 집들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지만, 우리가 살던 그 집은 높은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사이의 기간은 칠성동에 이사 가서 살았다. 선친이 후사를 잇기 위해 양자 간 오촌 당숙 댁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할머니 홀로 칠성시장에서 장사하며 사셨다. 날 귀하게 여기셨다. 점심 드시러 왔다 다시 가실 때 가끔 과자를 내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경명여자고등학교 담벼락에 있던 2층 집이었다. 그 집에 살며 옥산초등학교를 다녔다. 우리 4남매는 생계를 위해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2019년에 어머니랑, 지난달 도언이랑 가봤다. 그 골목의 많은 집들과 공동 우물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단독주택이 신축되어 있었다. 인형, 스톱워치, 문구 등을 구입하러 아내와 가끔 갔던 '칠성시장'은 옛 모습을 거의 잃었다.
 
    평소 서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인쇄골목'이라고 한다. 인쇄소가 많은 것은 그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인쇄소와 출판사가 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요일에 문을 연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주중에도 일찍 문을 연 곳을 보기 어려웠고 문이 내내 닫혀 있는 곳이 많았다. 계산오거리에 섰다. 건너편 오른쪽에 옛 금호호텔이 보인다. 직진하면 조치과가 있었다. 길을 건너 청라언덕을 올라갔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그 방향으로 새 문을 냈다. 코로나19기념관도 들어서 있었다. 신천지교회 교인들의 집단감염과 은폐로 급속히 퍼진 코로나19 감염 환자들을 동산병원이 전담했기에 세워진 것이리라. 신남네거리까지 내려갔다. 누나가 심장병 치료를 위해 입원한 '동산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 마지막 면회를 혼자 간 적이 있다. 불빛 없는 어두운 그때, 그 사거리에서 내게 뭔가 이야기하려고 길을 막아선 기독교인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병원을 향했다. 집으로 되돌아갈 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누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산병원 출입구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큰 아이가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입원실이 없어 가보지도 못하고 하루 만에 퇴원했었다. 그때 흘린 눈물에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길을 건너 서문시장 옆길을 지나갔다. 양산 수리하던 곳을 지나 육교 아래에 이르렀다. 그 많던 장난감 가게가 대부분 없어지고 몇 곳만 남았다. 길게 늘어선 노점과 상인들을 지나 어머니 따라 간 단추가게, 단추구멍내고 휘갑치기 해주던 가게, 지하에서 국수, 수제비, 김밥, 떡볶이 등을 팔던 그 많던 가게들을 찾아보았지만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없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 모른다. 1지구에서 5지구까지 특화된 시장이 대형 화재로 인해 종합매장으로 바뀌었음을 보았다. 날이 어두워진 일요일, 온갖 먹을거리를 파는 야시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5지구와 그 끝자락부터 길게 늘어선 이불 가게들을 지나 무침회 골목을 향했다. 이곳은 대신동이다. 선친이 살았던 곳이요 나의 호적지다. 옛날 논둑을 사이에 두고 대신동에 살던 선친이 내당동에 살던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112와 114로 다를 뿐이다. 그 논둑길에 신작로가 났다. 그래서 그 인근에 있는 시장 이름이 '새길시장'이다. '무침회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아들도 막 도착했다. 아들이 따뜻한 콩나물국을 끓였다. 시원하게 한 그릇 잘 먹고 나니, 글 써러 가시란다. 오늘 하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기억이 떠올라 몹시 침울하고 아팠던 내 마음을 아들과 아들이 끓인 한 그릇의 국이 달래주고 있었다.
 

2024년 11월 10일(일)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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