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닐 때 기술 과목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다. 앞으로 컴퓨터의 기술적인 큰 발전이 예상되는 만큼, 컴퓨터가 사람들의 일(직업)과 일터(직장)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그 시대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컴퓨터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를 연결하는 베이직, 포트란, 파스칼 등을 교과서에서 글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배웠을 뿐, 실제로 컴퓨터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하였기 때문에, 뜬 구름 잡는 말씀,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은 말씀처럼 들렸다.
실물 컴퓨터를 처음 본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흐른 뒤였다. 대학원 석사학위과정에 진학한 때였다. 동기(同期) 중에 대학 출판부에 근무하는 분이 있었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로 나보다 나이가 여덟 살이나 많았다. 전공이 같은지라 친한 형과 동생 사이처럼 늘 붙어 다녔다. 출판부 사무실에 컴퓨터 2대가 있었다. 그 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과제도 하고, 검색도 하고, 게임도 했다. 우리는 주로 과제 작성을 위한 수단으로 가끔 그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논문이나 책, 강연집 등의 초고(草稿)를 '원고지'에 썼다. 신문물에 대한 소식을 남보다 훨씬 일찍 접하시던 지도교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초고를 조교들이 수동 타자기(typewriter)로 입력했다. 대학원생들도 그랬다. 그 뒤에 전동 타자기로 대체됐다. 타자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소유한 물건이 되지 못했다. 타자기는 수동이든 전동이든 편집 기능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곧 타자기가 워드프로세서(word processer)로 대체되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IBM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드디스크가 내장되지 않은 초보적인 단계의 컴퓨터는 불편함이 많았다. 컴퓨터가 작동하려면 운영체계(대개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로 부팅한 다음, 한글입력 프로그램(한글, 보석글, 훈민정음 등)이 담긴 디스크로 교환해야 입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장 용량도 크지 않아 플로피 디스크(5.25인치, 뒤에 3.5인치)에 따로 저장해야 했다. 그 뒤에 286 컴퓨터가 출시되고 지도교수님께서 회장이었던 연구회에서 1대 구입했다.
그때부터 그 386 컴퓨터는 나 개인의 소유물과 거의 같았다. 그 컴퓨터가 지도교수님이 겸직하셨던 특수교육연구소에 배치되었고, 연구실에 있던 내가 교수님이 하신 여러 일들의 여러 원고들을 연구소에 가서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연구실보다 연구소에 주로 머물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가 되었다. 앞에서 한 편의 글을 쓴, 특수교육공학을 전공한 청구 선생의 지도를 받던 제자이자 후배가 연구소 식구들을 위해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시간이 몇 차례 있었지만, 학위논문 관계로 배우지 못했다. 전자우편을 보내는 일도 대학 교수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도 지나갔다. 2000년 밀레니얼 시대의 도래와 함깨, 핸드폰이 대중화되었다. 채 십년도 되지 않아 그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마다 한 대의 검퓨터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든 남들과 같이 있을 때든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한다. 영화도, 드라마도, 야구경기도 스마트폰으로 보고, 게임도 스마트폰으로 하고, 새로운 소식도 종이 신문 대신에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물건을 사는 일도 편의점이나 마트나 시장에 직접 가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 이제는 TV홈쇼핑도 한물간 것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스마트폰을 악용한 신종 범죄도 생겼고,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보이스 피싱' 범죄와 'N방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불법으로 남들의 몸, 특히 여인들의 '은밀한' 부위를 사진 촬영하여 유포하는 사건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서로 사귀는 남녀 간에 그 성교 장면을 촬영하여 어느 한쪽이 무단 유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 행위에 대한 동의 여부를 놓고 뒤늦은 다툼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고소나 고발로 법원의 판결을 구하는 등의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 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있다.
이제는 시외버스나 광역버스, 기차나 고속버스도 스마트폰으로 예약하는 시대가 되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일상이 있다. 특히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있다. 아무런 표정도 없고, 주위를 둘러보는 법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된 듯한 모양세다. 뭔가 모를 이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같은 때에, 같은 땅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과 너무도 다른 '아웃 사이더'가 된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젊은이들과 달리, 필요할 때 말고는 스마트폰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찾아 헤맬 때가 많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마트폰을 둔 곳을 잊어버리는 때가 더 잦아지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 그 사이에 내 또래의 사람들이 있다. 이어령 박사의 책 <디지로그>, 그 책의 제목만으로 말하면,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하여 지금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낀 세대'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소유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신분증, 은행계좌, 지문 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에 들어 있다. 스마트폰의 분실이나 도난은 그 소유자 또는 그 소유자가 가진 모든 것의 분실이나 도난과 같다. 스마트폰이 '스마트'해질수록, 사람들은 '똑똑함'과 거리가 멀어져가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스마트폰 하나 잃어버리면, 친구나 지인,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까지 다 잃어버릴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도 어려우니, 그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2024년 11월 15일(금)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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