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7] 명함을 주고 얻은 자유: 헌책방봉사기
본문 바로가기
Life h!Story: 사생애(私生涯)

[7] 명함을 주고 얻은 자유: 헌책방봉사기

by I'mFreeman 2024. 11. 7.

2022년 8월 나는 대진대학교에서 자원하여 명예퇴직하였다. 정년까지 9년 6개월을 남겨두고. 시간강사 5년까지 합해 29개 성상(星霜)의 세월을 몸담았던 강단에서 물러난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학문의 전당도, 상아탑도 아니다. 국가장학금이 있어 더는 우골탑도 아니다. 직업학교 같다. 대학이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럿 있을 것이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와 구조조정, 그리고 학생 수의 급감이 크게 한몫한 것은 분명하다. 내가 소속한 학교는 수도권에 있기에, 지방 대학들의 학생모집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다. 그와 달리, 이른바 ‘인(in) 서울’하지 못한 학생들의 무력감은 실로 심대하다. 공부는 대학부터라고,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자세히 알려주고 설득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많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퇴직을 결심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사람들이 마음만 먹고 퇴직을 실행하지 못하는 그 이유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날,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공문이 왔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하였다. 2022년 8월 가족들의 성대한 축하 속에 ‘명예롭게’ 퇴직하였다. 기념 강연 같은 번잡한 일은 조금도 없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강의가 2년간 원격수업으로 진행되었고, 마지막 학기는 원격과 대면수업이 절반씩이었다. 점진적으로 마침맞게 은퇴하게 된 것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여겨졌다.
 
  나이 오십을 바라볼 무렵, ‘사회적 낙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 학교법인의 이사를 두 번 한 적이 있다. 전임이사 잔여임기 채운 것과 새 임기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중도에 자진사퇴 한 것이다. 짧게 끝낸 이 자리가 등산으로 치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더 높이 올라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하산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명예퇴직으로 무탈하게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이제는 일개 범부(凡夫)일 뿐이다. 공부 좀 한 사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 셋 있다. 출판사, 서점, 한국고전번역원 입학. 퇴직 후 2년간 몹시 바빴다. 백수 과로사란 말처럼. ‘귀향’(歸鄕)을 준비하기 위해, 9월 고향 대구에 취업한 큰아이를 따라 내려왔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동네 인근의 헌책방을 찾아갔다. 그 많던 책방이 모두 사라지고 단 한 곳만 남아 있었다. ‘코스모스북’! 대구광역시가 지정한 ‘백년가게’ 5곳 중 하나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들어갔다. 사장이 커피 한잔하자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내일부터 여기 자원봉사라도 하소.”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과 소소한 소망, 그것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고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새 보금자리를 얻은 것이다. 대가가 있다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나라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렇기에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 줄 책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봉사를 시작한 지 보름쯤 되었다. 법학박사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한 두 분이 함께 하고 계신다.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다. 손님은 대부분 추억을 따라 직접 찾아오시는 각 분야의 전문가분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절판되었거나 희귀한 책들을 찾는다. 동양고전, 교과서, 소설, 한자(한문) 등이다. 오늘도 나는 전기자전거로 출근하여 문 열고 손님맞이하고 원하는 책을 찾아본다. ‘130만 권의 책’을 보유한 서점에서.
 

2024년 11월 3일(일)
ⓒ H.M. Han

 


 
[1] 이 글은 당초 사학연금관리공단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사학연금> 2024년 11월호에 싣기 위해 10월 11일(금) 투고한 것이다. 채택되지는 못했다. 지면의 분야, 원고 매수 초과, 글 솜씨 등이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면의 제한으로 말하려 했던 것을 다하지 못했다. 보충하기로 한다.
[2] 2024년 10월 8일 시작하여 그날 초고를 마무리했다. 어머니 면회하기 위해 집으로 가야 했다. 그리하여 마감일인 10월 11일 교정과 교열을 하여 마무리했다. 그 내용 그대로 오늘 날짜로 올린다.
[3] [보1] 내가 사숙하는 분 중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김정운 교수가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곧바로 퇴직한 사실이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 교수와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래 전공한 학과 교수가 되지 못하고, 그 주변부에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 노릇을 한 점이다. 실상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에디톨로지> 등 베스트셀러 작가와의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하기에 실로 초라하지만,

반응형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