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글을 마무리하고 공개발행하니, 밖에서 누가 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난 주에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L교수님이었다. 지난 번 만남에서 그가 살아온 경로나 사고방식 등이 나와 너무도 닮은 분이었다. 어떤 분에게 믈어 어렵게 연락처를 구했다. 술에 취한 채 혼자 택시 타고 간 것이 조금 걱정되었다. 얼른 문자부터 보냈다. 답문자가 왔다. 묘사를 다녀온 뒤 연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뒤에 통화벨이 오고갔으나 각각 소란스런 곳에 있어 통화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렇게 인연히 끝나는가 싶었다. 그랬런 그 분이 S대학 강의를 마치고 온 것이다.
막걸리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이웃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옛 집 인근의 자동차부품거리를 지나 옛 프린스호텔 근방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 분은 내년 2월로 퇴직한다. 퇴직 후에 마기름 생산 등 2가지 농사일과 과외선생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먼저 수학 과외선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어느 학원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1978년 예비고사에서 수석을 하고 이른바 스카이의 S대를 졸업한, 같은 대학 법대 교숙가 퇴직 후에 학원강사라니. 또 말했다. 같이 돈 좀 벌어 보자고. 늦게 얻은 아들의 하바드대 로스쿨 박사학위 공부을 돕느라 상당액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그 아들은 S대 장학금으로 공부했기에, 병역복무 1년 후에 의무로 S대에서 강의해야 한다고 했다).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는 내게 계획한 일을 제안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진솔하게 주고받았다.
막걸리 3병을 마시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하고 있으니, 가게 주인(대리인)이 눈치를 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ㅛㅣ에 포기하고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걷다 나는 길을 건너, 그 분은 계속 걸어가야 하는 지점에서 헤어졌다. 나는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야 했고, 그 분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옛 자리에 있는 아파트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혼자 걸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그와의 대화도 생각하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틀째 밤을 거의 못잔 채 어느 곳을 서성였다. 오늘 새벽까지 내가 마신 막걸라는 단 2잔! 정신을 가다듬었다. 4시 될 때까지 그렇게 차에 있었다. 그리곤 30분 뒤에 출발했다. 고향을 떠나 집으로 가기 위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죽고사는 것은 모두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새벽 고속도로는 한가로웠다. 쉬지 않고 달렸다. 서울 근방이 되니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한 두 곳에서 방향을 잃기도 했다. 구리-남양주 톨케이트에서는 하이패스 차선인 줄 알고 통과했다. 집에 도착했다. 2시간 정도 남았다. 톨비를 가상계좌로 입금하고, 머리 감고, 잠시 누웠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 운영위워회 4분기 회의가 있는 날이다. 5분 전이었다. 급히 준비해서 나갔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무리였지만 올라 왔는데, 결국 폐만 끼친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손등에 바를 글리세린을 사러 시내에 내려갔다. 다시 차를 세워 1시 30분이 되길 기다렸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내였다. 그 순간에 깊이 잠든 것이었다.
어머니를 만났다. 오늘은 많이 좋아보였다. 나를 먼저 알아보고 아들, 아들, 아들이다 하신다. 아내도 알아보고 이름도 말하신다. 가지 말라, 가지 마이소, 영원히, 우리 집에서 살자 하신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눈물은 참았다. 또 거짓으로 조금 뒤에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발길을 돌렸다. 아내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하러, 나는 집에 가서 쉬려고. 그제밤 둘째 이모 댁 근처 빵집에서 산 밤식빵 하나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잠에 들었다. 20시 경에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이 글을 '일기'처럼 쓴다. 도전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용만이 아니라, 문장도 다듬어야 하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이 정도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속으로 칭찬한다. 내일 태양은 또 밝아오리라.
2024년 11월 20일(수)
ⓒ H.M. Han
'Life h!Story: 사생애(私生涯)'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님의 문중은 안녕하신가요 (6) | 2024.11.24 |
---|---|
[13] 사람은 섬이다 (10) | 2024.11.23 |
[11] 초겨울, 낙엽과 고엽 (0) | 2024.11.18 |
[10] 일상을 바꾼 컴퓨터와 스마트폰 (4) | 2024.11.15 |
[9] 머슴과 황소 그리고 삼국지 (0) | 2024.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