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rset="UTF-8"> [10] 커피와 차(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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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抄書): 베낀 남의 글

[10] 커피와 차(茶)

by I'mFreeman 2024. 11. 19.

이 땅에서 간행된 것이든, 미간행이든,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책은 무엇일까. 아마도 경전(經傳)류가 아닐까 싶다. 그 밖의 분야별로는 음식에 관한 각종의 책일 것이다. 우리가 의식주라고 말하지만, 먹을 '밥'[식(食)]이 가장 앞에 놓일 것이다. 밥 먹을 걱정거리가 사라져야 살 '집'[주(住)]과 입고 가릴 '옷'[의(衣)]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부터 그 우선 순위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공기와 물이 없다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먹고 마시는 것, 곧 음식에 관한 책은 실로 다종 다양하다. 식재료, 조리법, 장식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식, 중식, 석식, 간식에 따라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도 다양하다. 이유식, 건강식, 약식, 식이요법, 다이어트식이란 말도 있다. 요즈음 이른바 '먹방'이 유행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전국 곳곳에 있는 '맛집'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다니는 것도 그만큼 음식이 인간의 삶에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음식도 있다. 간식으로 먹는 빵이나 떡, 과자, 술과 각종 음료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밥 대신으로 먹거나 마실 때도 있지만, 대개 그렇다는 것이다. 그중에 커피와 차(茶)가 있다. 서양을 경유해 이땅에 들어온 것과 중국을 통해 널리 확산된 것이다.

    오늘날 스님, 서예작가 등의 일부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이 땅의 사람들은 차보다 커피를 주로 마신다. 그 많고 많은 카페가 이를 말해준다. 미국에서 비교적 저렴했던 스타벅스가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을 두고 한국에서의 영업 방식을 도입한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매일 커피를 마셨다는 베토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찬사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바흐는 아버지와 커피 중독에 빠진 딸과 아버지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 일명 <커피 칸타타>란 작품을 남겼다. 그 딸이 "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다."며 커피 찬양을 늘어놓는다. 그 아버지는 그 어떤 협박에도 통하지 않자 커피를 포기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딸은 "
나와 결혼하려는 사람은 내가 커피를 마시는 걸 허락해야 할 걸!"이라며,  “아, 커피가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라고 노래한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긴 찬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여럿 보인다. 다음의 시는 곽종철 님이 "다음카페"에 남긴 자작시, "커피 찬가"라는 제목의 시다.

 

커피는 제2의 피 / 컵 안의 피 //
피보다 진한 따뜻함 / 피보다 높은 향기 / 언제나 내 몸이 환영하는 / 정다운 액체 불꽃
커피 마시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 / 커피 마시는 장소는 거룩한 사원 무념무상 / 잠시 속세의 우수사려
정리해 보는 시간  / 회끈하게 활달하게 내 몸을 충동하는 일탈의 순간 //

도란도란 이야기하듯이 녹음 산기슭 배경으로 보슬비 내리는 이 시간 / 따끈한 한 잔의 아메리카노 손에 잡으니  내 마음은 어느 새 / 푸른 하늘 비상하는 하얀 새로 변한다 //
커피는 오사시스 / 가장 쉽게 다다르는 지친 삶의 피난처 사막 같은 이 세상의 한 줄기 / 맑은 시내 서늘한 녹음 / 더위 지친 사람들이 잠시 들러 쉬어 간다 //
나도 머물러 쉬고 있다

 

    아편전쟁이란 전쟁의 빌미까지 제공한 차에 대한 찬사는 어떻까. 조선 시대에 그를 빼고 차와 차 문화를 논할 수 없다는 초의 선사(草衣禪師)가 있다. 차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과 함께, 이 땅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저작 <동다송>(東茶頌)을 남겼다. 이 둘 모두 <초의집> 권제3에 실려 있다. <동다송>의 존재는 한양대 정민 교수의 칼럼과 저술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교류가 깊었다. 앞의 저술은 중국 차서를 필사한 것이다.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2개 항목으로 나누었다. 차의 수확부터 음용까지 상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연 스님이 우리말로 옮긴 <독송용 동다송>(2001)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지면과 시간 관계로 원문은 생략한다.)

 

하늘이 예뻐하여 온 너 아름다운 나무여 그 덕스러움이 귀한 귤나무와 같도다
네 터를 옮기지 아니하여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나니
풍성한 잎은 찬 기운과 모진 추위를 견뎌내 겨우내 푸르러라
하얀 꽃은 서리에 씻겨 가울풍광을 빛나게 하여이다 (제1송)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모른다. 늘상 시간에 쫓겨 살아온 삶의 흔적이다. 나는 차를 즐기지 않는다. 솔직히 차의 향도 맛도 그렇게 좋다고 느낄 줄 모른다. 녹차든 홍차든 보이차든, 내 입안을 마르게 한다. 실상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보다는 커피가 낫다. 단맛을 좋아하기에, 아메리카노 커피나 설록차보다 인스턴트 커피 믹스가 더 입맛에 맞는다. 다만, 커피 한 잔, 차 한 잔을 두고 여유 있게 관물(觀物)하며 즐길 줄 아는 그 정신이 부렵다. 지금 나는 대구라는 이름의 고향 땅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 며칠째 피로와 불편함을 안고 지내고 있다. 오랫만에 커피 믹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 20여 분 뒤에 결정해야 한다. 어찌할까.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2024년 11월 19일(화)
ⓒ H.M. Han


[補] 논문 하나로 성문핵심영어의 첫 문장 "문(文)은 무(武)보다 더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는 말이 정말 그러함을 체험한 적이 있다. 글이 그렇게 힘 있는 것이기에, 글쓰는 이의 책임 또한 그만큼 막중하다. 어슬픈 글이었다.  뭔가 잘 맞지 않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 글을 올릴 당시 나의 처지와 상황 때문에 두루 살피지 못했다.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위에서 쓴 글 중에서 '동다송'과 '다신전'에 대한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는다. 2024년 11월 27일(수)

  1. <독송용 동다송>은 전남 해남에 있는 초의문화제집행위원회 주관 아래 여연(如然) 스님이 한글로 번역하고 우리출판사에서 2001년 간행한 것이다. 해남에서 초의문화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동다송> 전부를 번역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독송용"으로 행사에 쓰기 위해 <동다송>의 일부(17송)를 추려 옮긴 것이다. 35쪽밖에 되지 않는 소책자다.
  2. 모두 31송으로 구성된 <동다송>은 각 송마다 선인(先人)들이 남긴 차설(茶設)과 시(詩)를 인용하여 주석을 단 책이다. 이에 비해, <독송용 동다송>은 17송에 불과하고 원저자의 주석도 번역자의 해제도 없다. 서문도 없고 발문만 있을 뿐이다. 다행히, 2010년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이 주관하고 동국역경위원회와 고월용운 스님 공동으로 완역하였다. 모두 170쪽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확인했다.
  3. 초의 선사의 <동다송>은 그 찬술 시기를 대략 1832년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조선 최초가 아닐 수 있고 유일은 더욱 아니다. 최초의 다서는 <부풍향차보>라고 정민 교수가 밝혔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가장 대중적인 다서(茶書)라는 말은 가능할 것이다. 여러 절 홈페이지에도 <독송본>만 올려려 있다.
  4. 시간과 지면 관계를 핑계삼아 '일부'만 올린다 하고는 제1송 '하나'밖에 올리지 않았다. 오늘 제1송과 험께 17송을 모두 올릴 것이다. 참고하기 바란다.
  5. <다신전>과 <동다송>은 모두 초의 선사의 문집 권제3에 실린 것임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확인했다. <다신전>은 청나라 모환문(毛煥文)의 <다경채요>를 1830년에 필사한 초록집(다도서)이라 한다. 21개 항목이 아니라, 22개 항목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항목 간에 일치하지 않는다. 정정이 필요하다.
  6. 정민 한양대 교수가 차에 대한 책을 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정민 교수를 사숙하여 그의 책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지만, 차를 즐기지 않은 탓에 구입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의 저서는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2011, 김영사)다. 이 책이 차에 대한 우리들의 오해를 모두 풀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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