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 있다. 지금은 사그라든 것처럼 보이지만, 한 때 이 땅의 뉴스를 모두 빨아들이던 사건이다. 그 사건은 이른 바 "대장동사건"이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과 관련하여 일부의 사람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그 과정에서 특혜와 뇌물이 오고갔다는 그 사건 말이다. 이때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라는 회사 이름을 보고들었을 것이다. 이런 회사 이름은 특이하고 낯선 것이었다. 그리고 김**란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말할 때, 그 뒤에 작대기처럼 그어진 회사 심볼을 보았을 것이다.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란 말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괘(卦)다. 64개 괘(卦) 중의 둘이다. "천화동인"과 "화천대유" 는 각각 천화와 동인, 화천과 대유로 나누어진다. "천화"(天火)과 "화천"(火天)는 괘의 상(象), 곧 괘상(卦象)이다. "동인"(同人)과 "대유"(大有)는 괘의 이름, 곧 괘명(卦名)이다. "천화"(天火)라는 괘상은 하늘[天(천) ☰]이 위에, 바깥에 있고, 불[火(화) ☲]이 아래에, 안에 있는 모양이다. 반면 "화천"(火天)이란 괘상은 불[火(화) ☲]이 위에, 바깥에 있고, 하늘[天(천) ☰]이 아래에, 안에 있는 모양이다. 천화과 동인은 서로 위아래를 뒤집은 모양이다. 도전괘, 착종괘라 한다.
주역에서는 불[火(화)]을 리(離)한다. 하늘[天(천)]은 건(乾)이라 한다. 불의 상(象)은 ☲이고, 하늘의 상(象)은 ☰이다. 이 땅에서 산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태극기에서 보았을 것이다. 태극기에 있는 건곤감리 중에서 둘이 불과 하늘인 것이다. 동인이란 '사람들의 함께 함', 사람들의 '모임/모여듦'이다. 대유(大有)는 '큼의 있음' , '큰 것의 가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人]인지가 없고, 큰 것[大]이 어떤 것인지가 없다. 그 뜻을 알기 위해,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지은 두 괘의 괘사(掛辭)를 살펴본다. 두 괘에 매단[掛(괘)=걸다] 말씀[辭(사)]은 이렇다.
同人于野亨(동인우야형), 利涉大川(이섭대천), 利君子貞(이군자정). "사람을 들에서 같이 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군자의 바름이 이로우니라." [천화동인 계사]
大有元亨(대유원형). "대유는크케 형통하리라." [화천대유 계사]
공자는 64괘의 순서를 풀이한 <서괘전>(序卦傳)에서 "천화동인"을 "13번째" 괘로, "화천대유"를 "14번째" 괘로 놓았다. 이렇게 두 괘를 이은 것이다. 순서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모이면/모여들면[동인] 큰 것이 있음/가짐[대유]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에서 같이 해야 형통[亨(형)]하다 했다.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利(리)]고 했다. 군자라 하고, 군자의 바름[貞]이 이롭다[利(리)]고 했다. (그 이로움이) 크다[大有(대유)] 했다. 크게 형통하다 [元通(형통)] 했다. 이곳저곳에서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들어 합심단결하고 그 뜻한 바를 실천하면 큰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평생을 주역만 공부하신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은 그의 스승 야산(也山) 선생께 들은 말씀을 자신이 지은 ≪대산주역강의≫ 제1권에서 이렇게 전했다.
동인을 잘못하면 작게는 자기 개인을 망치고 크게는 국가를 망치기도 하며, 반면에 잘하면 입신양명하며 나라를 부흥케 한다. 선한 사람만 모여 안심하고 고루 잘 사는 대동사회(大同社會)가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역(易)이란 변함이다. 주역은 변함(change/changing)에 대한 책이다. 천지자연,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 변한다.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한다. 산천초목도 변한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열매가 맺히고, 가을이 오면 결실하고, 겨울이 되면 잎을 떨어뜨린다. 64괘의 괘명에 담긴 뜻 역시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 뜻을 같이 한 동지들이 선한 마음으로 동인(同人)하면, 얻은 그 큰 것이 복(福)이 된다. 반면, 불순한 마음으로 사적 이득을 위해 모여든다면, 얻은 그 큰 것이 오히려 화(禍)가 될 수 있다.
천화동인, 화천대유란 회사를 만든 분들은 이 괘사를 아전인수 격으로 풀이하고 회사 이름으로 정했을 것이다. 그 반면의 뒷풀이에 담긴 깊은 의미를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선(不善)한 마음의 사람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대유한 것이 대화(大禍)가 된 것이다. 공익(共益)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챙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니, 수사를 받고 구속되고 재판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 두 괘에 매단 괘사(掛辭) 그대로 되었다. 옛사람만이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까지 주역을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도 이런 화(禍)를 피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이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개인의 비리일 뿐이다. 정파적으로 달리 보고, 달리 해석할 그런 정치적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부당함으로 사익을 채웠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렸을 뿐이다. 나라의 위상을 추락시켰을 뿐이다. 그들 또한 사회적으로 추락한 것일 뿐이다. 엄중한 수사로 엄정한 처벌이 내려져야 함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 사회 지도층에 있는 분들도 상당수 이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일로 사회적 낙상을 하는 분들을 너무도 많이 보지 않는가.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얻기만 하면, 높이 올라가는데만 관심을 둘 뿐,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려올 일을 준비하지 않는다. 막상 아래로 내려오면, 그 호시절을 잊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무릇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다. 누구든 언젠가는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안전한 하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때가 너무 늦어서도 안 되고, 때를 너무 앞서서도 안 된다. 시중(時中), 곧 때를 잘 맞추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낙상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11월 22일(수)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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