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촌 남동생 3명 중에서 2명이 의사다. 작은 집의 큰동생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에서, 작은 동생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 두 동생과는 일면식도 없다. 나는 대구에서 살고 그 두 동생은 서올에서 살았다. 가끔 숙부와 숙모께서 대구에 내려오실 때에, 두 동생을 대동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족보 관계로 서울대병원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과 전체가 휴진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의국에 전화해서 내 연락처를 남겼지만 응답은 없었다. 숙부님께 전화했다.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곧 숙부님이 심하지 않은 치매 상태임을 알았다. 숙모님께 말씀드렸다. 자랑스런 두 아들을 족보에 등재해야지 않겠냐고. 주위에 의사가 차고 넘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말머리로 삼은 것은 아래와 같은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우리 곡산한씨 대문중 이사회에 observer 자격으로 한번 참석했다. 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내 사촌 동생 둘이 의사라는 말을 먼저 들은 분이 그 사실을 공지했다. 그 말을 들은 분들은 대부분 70대, 80대 노인이었다. 무슨 귀중한 정보를 입수한 듯이, 재차 묻고 병원과 진료과목과 사촌 동생 이름을 종이에 적어가셨다. 이미 이러저러한 질병으로 서울에 있는 5대 대형병원을 다니고 있는 분들이 여럿 되었다. 그곳 경주는 동국대학교 병원과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있는 곳이다. 오늘날 말하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의사와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세상이다. 세칭 김영란법 때문에 공식적으로 어떤 청탁도 할 수 없음에도.
이번 정부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과거 정부에서 해내지 못한 일이다. 순차적 증원이 아니라 일시에 증원한다는 방안은 무리가 아닐까 의문이 있었지만, 정원을 증원하는 정책은 어떻게든 이루어내기를 바랐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해를 넘기면서도 별 진전이 없다. 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 특히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대립하고 있으니, 공적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양측에서 어떻게든 대결단을 내려 병원의 운영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보다 더 많은 의사가 양성되어 모든 국만들이 더욱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그날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나는 의사도, 의료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려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신문·방송 보도와 직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의사들의 일탈 행위와 마치 고유헌 기득권인 양 갖고 있는 의사들의 부당한 권한에 대한 것이다. 전문의 면허취득을 위한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의사들은 대학병원에서, 특히 입원병동에서 너무도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른바 '전공의'는 응급상황이면 언제든 달려가야 한다. 늘 병동 내에서 쪽잠을 잔다. 외모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그 역할에 비해 처우가 너무도 열악함을 직접 보았다. 미국에서는 집에서 잠자던 의사(전문의)도 전화가 오면 병원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TV애서 본 적이 있다. 수련의의 근무환경 개선과 급여 인상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중인이 담당하던 의사라는 직업이 오늘날 막대한 수익과 권한을 안겨주는 것으로 변모했다. 그제 만난 서울대 이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서울대학교병원, 같은 병원 같은 곳에서 진료를 보는 의사의 급여가 80만원부터 1억 2000만원까지라 하며 했다. 월 최고 1000만원 정도가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이라고 했다. 80만원은 일반의사(수련의)의 월급일 것이고, 1억원 이상은 전문의(교수) 중에서 환자가 많은 의사,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고, 또 돈이 최고라는 배금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식을 의대에 보내려 한다. 과학자 양성이라는 특수목적을 가진 과학고의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했다. 정부에서 이를 금지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니 우리가 과학 천재가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KAIST에는 과학 천재가 없다는 것이다. 예전 학력고사에서 수석한 학생은 물리학과 진학이 보통이었던 것과 참으로 대조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눈 곳을 한번 둘러보자. 병의원이 있는 곳에 약국이 있다. 의약분업에 따른 결과다. 안과 옆에 또는 안에 안경점이 있고, 이비인후과 근방에 또는 같은 건물 내에 보청기 판매점이 있다, 정형외과(신경외과) 내에 보통 물리치료실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대학 병원 입원병동에는 임상심리사(전문가 포함) 등이 있고, 개업 의원에는 각종 심리상담센터, 발달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다. 안경광학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을 의료기사라 한다. 대개 전문대학 3년제 보건 관련 과를 졸업하고 자격을 취득한다. 임상심리사는 심리학과와 그 관련학과 졸업자로서 소정의 실습을 받은 후 산업인력공단에서 추관하는 시험에 합격한 이들이다,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밖에 없다. 동네 의사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학도 전문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서울 강남에 소재한 피부과는 '미용'피부에 전념하고 있어 '일반'피부병이 있는 사람들이 갈곳이 없다고 한다. 육아법을 배운 적이 없는 부모들, 그로 인한 행동문제를 지닌 아동의 급증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지도 오래되었다. 범죄자의 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에도 그 수사를 맡은 전직 경찰이 프로파일러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고 있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하다. 반면 정신건강의학의 전문 분야인 대학의 재활의학과 의사(교수)가 '자폐증 진단`을 내린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안등록을 할 때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그 진단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제 할 일은 제쳐두고 돈벌이에 나선 모습이다. 천민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의사로서 직업윤리 같은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에 대해 말한다. 나는 심리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심리학과 교수를 한 사람도 아나다. 나는 스스로 심리학 언저리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말한다. 앞에서 말한 각종 TV 프로그램의 인기, 심리학에 대한 각종 교양서적 또는 자기개발서의 범람, 현실의 삶 속에서 겪는 사람 간 관계의 어려움 등이 우수학생들을 대학 심리학과 입학을 유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날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무엇인지도 몰랐고(철학관과 관련된 것으로 알았다) 그랬기에 인기가 없는 학과였다. 지금 4년제 심리학과(관련 학과 포함)를 졸업하면 '청소년상담사(3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또,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취업할 때에는 이들 국가자격 소지보다 각종 학·협회의 국가공인자격이 더 중요하다. 더구나,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는데 필요한 수퍼비전(일정의 수련과정)을 받는데 많은 돈이 든다. 이로 인하여, 상담심리학이나 임상심리학이 대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그 사이에 '놀이'치료, '미술'치료, '예술'치료, '문학'치료 같은 '유사'(pseudo) 임상심리학이 판을 치고 있다. 심리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전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에 취업하여 일하거나 취업하기 위해 또 다시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의 심리학과, 언어치료학과, 언어청각학과 등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곳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등록'심리학자(registered psychology), '구어-언어병리학자'(speech-language pathlogist)와 같은 전문직이 있다. 철학박사(PhD) 학위 소지와 함께, 소정의 시험 통과와 주 정부 등록 등이 필요하다. 미국과 동일한 또는 유사한 자격 기준을 채택하더라도, 이들 분야를 전문화하여야 한다. 각종 심리검사의 실시와 해석, 그에 따른 처치, 곧 상담과 심리치료(정신분석은 예외)에 대해 어떤 배움도 없는 의사에게 지금처럼 엄묵적으로 권한을 부여해온 관행은 타파해야 한다. 의학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은 분야에 한해 으ㅏ료법에 따라 진료하도록 하는 것이 의료법 밖의 진료행위, 곧 불법의료행위를 차단하는 길이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 논의는 의사의 특권 내려놓기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까닭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심리검사와 치료는 심리학자에게, 보청기 착용·훈련은 청능학자에게, 구어-언어치료는 구어·언어병리학자에게!
2024년 11월 21일(목)
ⓒ H.M. Han
* 이 글은 글쓴이의 사견이며, 특정 직업군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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