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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抄書): 베낀 남의 글

[1] 지기(知己)

by I'mFreeman 2023. 10. 20.
若得一知己(약득일지기)。我當十年種桑(아당십년종상)。一年飼蠶(일년사잠)。手染五絲(수염오사)。十日成一色(십일성일색)。五十日成五色(오십일성오색)。曬之以陽春之煦(쇄지이양춘지후)。使弱妻(사약처)。持百鍊金針(지백련금침)。繡我知己面(수아지기면)。裝以異錦(장이이금)。軸以古玉(축이고옥)。高山峨峨(고산아아)。流水洋洋(류수양양)。張于其間 (장우기간)。相對無言(상대무언)。薄暮懷而歸也(박모회이귀야)。

 

만약 내가 지기(知己)를 얻는다면 이렇게 하겠다.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인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 햇볕에 말려서
아내로 하여금
강한 바늘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한 다음,
고운 비단으로 장식하고
옥으로 축을 만들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이 있는 곳에다 걸어놓고
말없이 바라보다가
저물녘에 돌아오리라.
ⓒ 1981 한국고전번역원

 
 
이 글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치세기에 규장각 검서관을 역임한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선생이 저술한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실려 있는 글의 일부다. 이덕무 선생의 저술을 모두 모아 엮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63권이 <선귤당농소>다. (蟬)은 매미인 바, 매미는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新)의 오덕을 지녔다 한다. 귤(橘)은 과실 귤인 바, 한결같은 뜻을 지녔다 한다. 당(堂)은 집이니, 이 둘을 집의 이름, 곧 당호로 삼은 것이리라. 농(濃)은 짙은, 소(笑)는 웃음이다. 청장관(靑莊館)은 이덕무 선생의 여러 호 가운데 하나다. 맑고 장중한 집이란 뜻의 청장관(靑莊館)을 아호로 삼았으니, 어떤 정신과 자세로 살아가려 했는지 알 듯하다. 구서(九書), 곧 책에 대해 아홉을 말했고,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보는' 바보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곤궁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어제 밤에, 긴 세월 나의 '지기'였지만 소원해진 윤현이 전화를 받고 길게 통화했다. 하여 이 글을 찾았다. 예전 어느 날 신문, 아니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지금 위의 국역문을 읽어보니, 뭔가 어색하다. 빠진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분야 문외한이지만, 내 나름대로 고쳐 봤다.
 

내가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는다면,
뽕나무 종자를 심어 10년 키우고,
1년 동안 [뽕잎으로] 누에를 길러 [고치에서 얻은 실을],
손수 오색 물들인다.
10일에 빛깔 하나 물들일 수 있다면,
50일이면 빛깔 다섯 모두 물들일 수 있으리라.
이를 따뜻한 [봄날] 햇볕에 [쬐어] 말리고,
[여린] 아내로 하여금,
단단한 바늘로 내 벗 얼굴을 수놓게 하고,
꾸밈은
진귀한 비단으로 하고,
굴대는
오래된 귀한 옥으로 만들 것이다.
높은 산 아름다운 곳,
흐르는 물 웅대한 곳,
그 사이에 걸어두고,
서로 말없이 바라보다,
해저물녁에 돌아오리라.

 
이렇게 고쳐도 잘 읽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예전에 본 그 글을 찾아야겠다. 아무튼 이덕무가 하겠다는 걸 하려면, 10년하고도 석 달 이상의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솜씨 좋은, 마음씨 좋은 아내의 도움이 있더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벗 한 사람을 얻는다면, 이 정도(?)의 수고와 정성은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진실로 아름답다. 또, 눈물겹다. 이덕무에게 이런 지기가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지난날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한 사람의 '지기'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누굴까. 몇일까. 그(들)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태까지 나를 지기라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그를 '알고' 그 또한 나를 '아는' 사람, 내 마음을 어떤 '거리낌도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 또한 내게 그럴 수 있는, 그런 길벗 '한' 사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초서"(抄書)라는 범주에 넣은 첫 글이다. 내 마음에 드는 남의 글을 베낀 글을 중심에 놓고 뒤에 간략한 나의 소감이나 생각 등을 적은 글들을 "초서"라 이름한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거칠게라도 적고 그 글과 관련이 있는 남의 좋은 글을 인용한 글을 "질서(疾書)라 하여 서로 구분한다. 이 착상은 정민 교수, 다산 선생에게 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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