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거나, 열심히 공부하거나, 학문연구에 피나는 노력을 다함을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을 빌어 비유한다.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이다. 이 유명한 말은 모두 10권으로 된 ≪공자가어≫(孔子家語)라는 책에 실려 있다. 뒤에 위나라의 왕숙(王肅)이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공자(孔子)에 관한 일화 중에서 ≪논어≫에는 빠져 볼 수 없는 것들을 모아 만든 고서여서 가치가 높다고 한다. ≪공자가어≫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이렇다.
공자가 만년(晩年)에 역(易)을 좋아하여, 책을 맨 가죽끈[韋(위)]이 세 번 끊어졌다.
[孔子晩而喜易(공자만이희역), 韋編三絶(위편삼절).]
한(漢)나라 때 태사공(太史公) 사마천 (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에도 이 말이 나온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실려 있다. 잘 알다시피, 사기는 연대에 따라 서술한 "편년체" 역사서가 아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기전체" 역사서다. 사마천이 처음으로 쓴 역사 서술체제다. 제왕의 역사를 <본기>(本紀)라 하고, 제후(국)의 역사를 <세가>(世家)라 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연표로 간략히 적은 것을 <표>(表)라 하고, 주제별로 적은 역사를 <지>(志)라 하고, 인물과 이민족의 역사를 <열전>(列傳)이라 했다. "기전(紀傳)체"란 맨 앞의 본기에서 기(紀)를 따고 맨 마지막의 열전에서 전(傳)을 따서 이 둘을 합친 말이다. 공자는 사(士)일 뿐이었다. 대부(大夫)가 된 적도 없으니, 제후[公(공)]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공자를 세가에, 그 제자들을 열전에 포함하였다. 그만큼 공자를 높인 것이다. ≪공자세가≫에 실린 내용은 더 구체적이다.
공자가 만년에 역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說卦), 문언(文言)을 서(序)하고, 역(易)을 읽어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몇 해를 빌어 이와 같이 한다면, 나는 역에서 곧 한층 더 밝은 빛이 날 것이다.
[孔子晩而喜易(공자만이희역), 徐彖繫象說卦文言(서단계상설괘문언), 獨易韋編三絶(독역위편삼절). 曰(왈), 假我數年若是(가아수년약시), 我於易則彬彬矣(아어역즉빈빈의)."
이때 역(易)이란 주나라의 역(易), 곧 ≪주역≫(周易)을 말한다. 이것을 유가(儒家)에서는 역경(易經)이라 한다. 주역이란 책은 지금처럼 종이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종이도, 인쇄술도 발명되기도 전이다. 죽간(竹簡) 곧 대쪽에 글을 쓰고 이를 가죽으로 묶은 것이다. 필사본이라 할 수 있다. 冊(책)이란 글자는 이것을 상형한 것이다. 죽간을 묶은 가죽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고, 읽고, 또 읽은 것이다. 책 한 권을 다독(多讀)한 것이다. 얼마나 많이 읽고 또 읽었으면, 그 길긴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을까. 그렇게까지 하고도 배우겠다 했다. 앞에 이미 배운 것과 몇 년 더 그렇게 하여 배운 것이 서로 어울려 역경에 더욱 더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집인 ≪논어≫(論語) <술이>(述而) 제16장에도 이와 같은 말이 보인다. 공자 말씀이다.
子曰(자왈), 加我數年(가아수년), 五十以學易(오십이학역), 可以無大過矣(가이무대과의).
이 말씀에 대한 풀이가 여럿이다. 주희는 오십(五十)을 졸(卒)의 잘못된 표현으로 파악했고, 또 이 말씀을 할 무렵 공자가 만년(晩年) 70세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70세 공자가 "조금 더 살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역경을 배워서 큰 허물[大過(대과)]이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역경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역경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다산선생은 달리 해석한다. 사기보다 논어가 더 신빙성이 있으니, 오십(五十)이 맞고 가(加)도 원래대로 풀이하는 것이 맞으며[假(가)가 아니라], 나이는 형병(邢昺)의 견해대로 47세 안팎으로 보았다. 이렇게 보면, "나에게[我] 몇 년[數年(수년)] 더 살 나이를 더해주어[加(가)], 50세까지 역경을 배울 수 있다면[學易(학역)], 큰 허물[大過(대과)]은 없을 수 있을 것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희의 풀이보다 더 적절한 풀이일 것이다.
대과(大過)가 역경(주역) 64개 괘 중에서 28번째 괘, 곧 "택풍대과"(澤風大過)임에 주목하여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이 말씀을 할 무렵의 공자 나이 70세에 오십을 더한 120이 본래 타고나는 수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또 오십은 주역의 기본수인 50 대연수(大衍數)를 말한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해를 조금 더해, 오십만 더 살아서 주역을 배울 수 있다면,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 또는 "50이라는 수를 놓고 주역을 좀더 연구했더라면, 그런 부도덕한 대과의 세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탄식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공자가 배운 역(易)은 복희(伏羲)씨가 그은 작대기[卦象(괘상)], 그 작대기의 상(象)를 보고 문왕(文王)이 지은 괘사(卦辭)와 주공(周公)이 지은 효사(爻辭)다. 여기까지 경(經)이다. 공자는 역경(易經)을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만큼 엄청나게 많이 읽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역경을 풀이하는 글을 썼다. 공자가 풀이한 글을 "십익"(十翼)이라 한다. 역경에 대한 10권의 해설서다. 익(翼)이란 날개 또는 돕는다는 뜻이다. 역경 읽기를 돕기 위한 글인 것이다. 곧 단전(彖傳), 상전(象傳), 계사전(繫辭傳)[상, 하], 설괘전(說卦傳), 문언전(文言傳)[건, 곤], 서괘전(序卦傳)[상, 하], 잡괘전(雜卦傳)이다.
성인(聖人)이 쓴 글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賢人)이 쓴 글을 전(傳)이라 한다. 이를 합하여 경전(經傳)이라 한다. 이 십익은 성인 공자가 쓴 글이지만, 경(經)이라 하지 않고 전(傳)이라 한다. 역경을 그만큼 큰 글로 본 것이다. 그렇기에 "풀이할 뿐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같은 편 제1장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풀어내어 전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고, 옛 것을 믿고 좋아하는 것을 가만히[남몰래] 우리 노팽과 견주어 본다.
[子曰(자왈),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 竊比於我老彭(절비어아노팽).
노팽(老彭)은 상(商)나라 대부로 현인이다. 그밖에 알려진 것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은(殷)나라는 본래 상(商)나라를 격하한 표현이다. 우리[我(아)]라 한 것은 공자가 상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학문을 상나라에 두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주(周)를 따르겠다."(吾從周)고 하신 말씀이 있으니, 이 둘 모두 아닐 수도 있겠다. 옛 것을 있는 그대로 풀이하여 전하기만 한다는 것은 주역에 한정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지어내지 않는다면, 학문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온고지신보다 법고창신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창신]하되 옛 법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다산 선생의 술이 편 풀이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고사다.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이 고사는 다산이 가장 아꼈던 수제자 황상(黃裳 1788-1863)의 문집 ≪치원유고≫(巵園遺稿)의 <회주 삼로에게 드림>(與褢主三老)이란 글에 있다.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493쪽)에 그 풀이가 나온다.
산방에 처박혀 하는 일이라곤 책 읽고 초서(鈔書)하는 것뿐입니다. 이를 본 사람은 모두 말리면서 비웃습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을 그치게 하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귀양살이 20년 동안에 날마다 저술만 일삼아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났습니다. 제게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 몸으로 가르쳐주시고 직접 말씀을 내려주신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귓가에 쟁쟁합니다. 관두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난 것은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매일 저술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오늘날처럼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방바닥에 앉아 책상다리(반가부좌)를 하고 공부했다.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랬다는 것이다. 황상이 있었기에, "과골삼천"(踝骨三穿)의 고사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다산과의 '참 만남'을 황상은 ≪치원유고≫ <임술기>(壬戌記)에 이렇게 기록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간 이듬해인 1802년 머물던 주막집 골방에서 15세이던 황상이 처음으로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그곳에는 동네 아전의 자식 몇이 다산에게 글을 배우고 있었다. 황상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서, 다산은 이 수줍음 많은 소년의 총명함을 바로 간파했다. 문사(文史) 공부를 권했다. 황상은 부끄러운 낯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我有病三(아유병삼), 一曰鈍(일왈둔), 二曰滯(이왈체), 三曰戞(삼왈알).]
이 말을 들은 다산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짓는 것이 날랜 사람은 글이 들떠 날리는 것이 병통이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사람은 거친 것이 폐단이다. 무릇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된다. 막혔다가 뚫리는 사람은 그 흐름이 성대해진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學者有大病三(학자유대병삼), 汝無是也(여무시야). 一敏於記誦(일민어기통), 其弊也忽(기폐야홀), 二銳於述作(이예어술작), 其弊也浮(기폐야부), 三捷於悟解(삼첩어오해), 其弊也荒(기폐야황). 夫鈍而鑿之者(부둔이착지자), 其孔也闊(기공야활), 滯而疎之者(체이소지자), 其流也沛(기류야패), 戞而磨之者(알이마지자), 其光也澤(기광야택). 曰鑿之奈何(왈착지내야), 曰勤(왈근). 疎之奈何(소지내야), 曰勤(왈근). 磨之奈何(마지내하), 曰勤(왈근). 曰若之何其勤也(왈약지하기근야), 曰秉心確(왈병심확).]
다산은 둔함을 소홀함이 없음으로, 막혔음을 들떠 날림이 없음으로, 답답함을 거칠지 않음으로 반전시켜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함"[勤(근)]이 있어야 한다 했다. "세 번" 말했다. "삼근계"(三勤戒)를 내려준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다잡으라"[秉心確(병심확)] 했다. "마음을 굳게 다잡아 부지런히 노력하라" 했다. 황상(黃裳)은 이런 다산의 가르침을 뼈에 새겨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다산의 공부법은 질서(疾書)와 초서(抄書)였다. 문득 깨달은 것은 놓치지 않고 재빨리[疾(질)] 붓으로 종이에 썼던[書(서)] 것이 질서라는 공부법이다. 일정한 주제를 갖고 글을 지을 때, 그에 해당하는 구절을 다른 책들과 경전에서 찾아 그 구절을 모두 카드 같은 작은 종이에 베껴[抄(초)] 써서[書(서)] 같은 종류별로 모아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축적한 자료를 집대성(集大成)하여 얻은 결과가 경집(經集) 232권과 문집(文集) 260여 권인 것이다. 500권에 가까운 저술을 제자들과 협업의 통하여 이루어낸 것이다.
황상은 나이 70세가 넘도록 계속 초서를 했다. 사람들이 "그 나이에 초서는 해서 무엇 하느냐" 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강진에서 20년 유배 생활 동안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하셨다. 거기에 대면 내 공부는 공부도 아니다." 황상은 다산의 가르침을 받아 3년 반만에 다산의 형인 정약전이 깜짝 놀랄 정도의 문장가가 되었다. 시인이 되었고 추사 김정희의 극찬을 받았다. 다산의 제자 사랑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은 만남이요 가르침이다. 스승 한 분 잘 만나는 것도, 제자 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크나큰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에 어른이 필요하다. 이런 배움과 이런 가르침, 이런 스승과 이런 제자가 지금 이 땅 어디에라도 있는 것일까. 나부터 생각해 본다. 자못 궁금하다.
2023년 12월 9일(토)
ⓒ H.M.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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